서울 홍은동 M초등학교 5학년 유성이(11) 아빠인 회사원 박동철씨(42).


여름방학이 가까워지면서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37명인 유성이네 반 아이들중 올 여름 영ㆍ미권 국가로 조기 유학길에 오르는 아이가 6명.


방학 한달간 단기 어학 연수를 떠나는 아이까지 합치면 절반 이상 되는 아이들이 해외로 나가기 때문이다.


박씨는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2년 이상 아이를 유학 보내는 부모들이 주변에 수두룩하다"며 "작년까지만 해도 아이를 조기유학 보내는 친구들을 보면 '쓸데없는 낭비'라며 핀잔을 줬지만 이젠 '우리 아이만 뒤처지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된다"고 털어놨다.


그는 "아이와 아내를 해외로 보내고 '기러기 아빠'가 되는 건 둘째 치고라도 월 2백60만원 정도 받는 샐러리맨 봉급으로 연간 수천만원씩 드는 경비를 감당할게 엄두가 안나 고민"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증권사 대리 최희석씨(33)는 요즘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직장생활 7년차로 접어들었지만 승진 경쟁에서 밀리면서 마흔살이 넘어서도 회사에서 살아남으려면 전문 지식을 갖춰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같은 나이인데도 경영학석사(MBA) 학위와 외국계 회사 경력을 갖춘 재미교포가 사업부장으로 특채된 것을 보고 더욱 분발하게 됐다.


지난 1년간 주경야독하며 GMAT, TOEFL에서 높은 점수를 딴 그는 내년초 MBA에 도전한다.


해외 유학이 붐을 이루고 있다.


과거 일부 특권층 자제나 명문대를 졸업한 엘리트들만 유학길에 오르던 것과 달리 요즘에는 자신의 경력을 한단계 높이려는 직장인에서부터 시험이나 입시 위주 교육을 탈피, 선진 교육을 받거나 영어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배우려는 초ㆍ중ㆍ고생에 이르기까지 너도나도 유학을 떠나는 추세다.


교육인적자원부에 따르면 해외 유학 인구는 지난해말 현재 15만명을 넘어섰다.


지난 95년 2천2백59명에 머물렀던 초ㆍ중ㆍ고 조기유학자는 2001년에는 7천9백44명으로 늘었다.


이 가운데 초등학생 조기유학자는 2백35명에서 2천1백7명으로 무려 10배 가까이 급증했으며 전체 조기유학생 가운데 초등생이 차지하는 비율 역시 같은 기간 10.4%에서 26.5%로 뛰었다.


국내 대학을 포기한 채 외국 유명대학으로 바로 진학하는 학생들도 해마다 늘고 있다.


이런 경향은 특목고에서 특히 두드러지는데 전국 16개 과학고 졸업생의 경우 2000년 7명, 2001년 18명, 2002년 14명 등 지난 3년간 총 39명이 미국 일본 등 해외 대학에 바로 진학했다.


외국어고의 외국대학 진학자는 더 많아 서울시내 6개 외고의 경우 지난 3년간 총 76명이 외국대학에 바로 들어갔다.


교내에서 해외 유학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대원외고는 작년 4백20여명의 졸업생중 6.1%인 26명이 에모리, 뉴욕, 퍼듀대 등에 진학했다.


서울의 덕원예고 서울체고 등에서도 7명을 지난 3년간 일본 오스트리아 중국 등에 진학시켰다.


이처럼 유학이 크게 늘고 있는 이유로 전문가들은 '국제화'를 꼽는다.


글로벌 시대에 한국에서만 교육받고 활동하기에는 세계가 너무 좁아졌다는 것.


홍영규 아폴로해외이주 대표는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자신의 꿈을 펼칠 나라를 찾기 위해 매년 2억명이 넘는 인구가 외국으로 이동하고 있을 정도로 유학이나 이민은 세계적인 추세"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유학이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는 보증수표는 아니다.


치밀한 계획 없이 유학을 떠나 수천만∼수억원의 돈을 쓰고도 그만한 성과를 못 거두는 경우도 있고 현지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고작 3류 영어나 익히고 돌아오는 사례도 적지 않다.


특히 조기 유학의 경우 부모의 무리한 욕심 때문에 의욕도 없는 아이를 해외로 떠나보냈다가 정서적으로 불안해지고 비뚤어지는 경우도 많다.


유학 전문업체 드림아이의 민은자 원장은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해외문화를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자세와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사고가 필요하다"며 "인생 목표를 분명하게 세우고 미리 철저히 준비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방실 기자 smi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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