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21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보수단체' 회원 11만여명(경찰 추산)이 모인 가운데 열린 '반핵.반김, 한미동맹 강화 6.25국민기도회'에서 일부가 몸속에 숨겨온 1m×3m 크기의 인공기를 불태우려 하자 이를 소화기로 진화했다. 경찰이 이처럼 인공기 소각을 막기 시작한 것은 부산아시안게임 중이었던 지난해 10월부터. 당시 6.25 전쟁 납북인사 가족협의회 회원들이 서울 중구 정동 덕수궁대한문 앞에서 집회 도중 인공기와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사진을 태우려고 하자 경찰은 집회장에 들어가 이를 빼앗았다. 경찰 관계자는 "대한민국 땅에서 인공기를 태우는걸 막을 이유는 없지만 현재 부산아시안게임이 열리고 있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지난 4월19일 보수단체의 집회 때에도 반복됐고 21일 집회에서 다시 재연된 셈. 이를 두고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은 "경찰이 좌익화됐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경찰의 속내를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반박한다. 그렇다면 경찰은 왜 인공기 소각을 막는 걸까. 경찰은 경찰관직무집행법 상 위험발생의 방지 조항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상 방화 금지를 근거로 들고 있다. 즉 '인공기'를 불태우는 게 문제가 아니고 인공기를 '불태우는' 게 문제라는 설명이다. 경찰청 보안과 관계자는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예전에는 반공이 국시이다 보니까 인공기 등을 불태우는 불법 행위가 있어도 이를 막지 않았지만 이제는 법대로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위 참가자들이 굳이 인공기를 불태우겠다면 이를 경찰관직무집행법으로 처벌할 수는 없는 만큼 집시법이 사실상 유일한 근거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성조기를 불태우면 형법상 외국의 국기(國旗), 국장(國章)의 모독죄에 해당한다. 하지만 북한은 '외국'이 아닌 만큼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경찰청 법무과 관계자는 "인공기 등의 소각을 막는 법적 근거에 대해서는 제대로 검토해보지 못했다"며 검토 전 의견임을 전제로 "국민은 '인공기'에 초점을 맞추는데 반해 경찰은 '방화'라는 간접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마찰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집회 참가자들이 인공기를 불태우지 않고 찢는다면 경찰이 막을 근거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chungw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