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금 성격규명' 규명작업에 주력해 온 특검팀이 최근 현대그룹에서 나온 거액의 뭉칫돈이 사채업자 등을 통해 세탁 과정을 거친 사실을 포착, 추적에 들어가면서 '북송금' 수사의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현대그룹에 대한 '비자금' 수사는 북송금과 관련한 핵심 고위 인사들의 진술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특검팀에게 '압박 카드용'일 뿐만 아니라 정.관계로 돈이 흘러간 '배달사고'로 판명될 경우 큰 파장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검팀은 16일 명동 사채업자 5~6명을 불러 뭉칫돈의 돈세탁 과정에 협조한 사실이 있는지 여부를 조사한데 이어 17일에는 서울 삼청동 모 식당 주인을 소환해 본인 계좌에 1억8천만원 상당의 CD(양도성예금증서)가 입금됐다가 빠져나간 경위를 조사했다. 계좌 주인은 "나도 모르는 사이 2000년 5월께 1억8천만원짜리 CD가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특검에 와서 들었다"며 "하지만 특검에서 보여준 CD증서의 배서는 내가 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해 제3자를 통한 돈 세탁 과정의 일단을 드러냈다. 특검팀은 당초 박지원 전 장관 비서역 하모씨 계좌에 대한 조사를 일단락 짓는 등 계좌추적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관측이 우세했으나 박 전 장관 소환 시점에 맞춰 사채업자들을 대거 불러 조사하면서 특검 안팎에서는 심상찮은 조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그룹의 비자금이 명동 사채업자는 물론, 이 지역 일대 음식점 주인 등을 통해 교묘하게 세탁된 뒤 정치권으로 흘러들어 간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질 형편이다. 특검팀 관계자는 이와 관련, "대북송금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해 자금을 추적중이며 통상적 기업의 정치자금과 그 이상을 판단할 지적인 능력도 있다"고 말해 이 부분에 대한 수사의지를 내비쳤다. 수사대상이 된 2000년 5월은 산업은행의 현대상선에 대한 부당대출이 이뤄지기 직전이어서 현대가 북송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정치권에 로비를 벌이고 그 반대급부로 산은에 '외압'이 가해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또한 현대에 대한 특혜성 지원 논란 속에 시행된 회사채 신속인수제도 시행 배경에 검은 로비가 작용했는지 여부도 다시 주목된다. 또한 이 돈이 대출에 도움을 준 박 전 장관과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나 정치권 에 흘러들어갔다는 단서가 드러날 경우 이들 인사들에 대한 사법처리 수위가 한층 강화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박 전 장관과 이 전 수석에게는 기존에 알려진 직권남용 혐의 외에 알선수재 등 금품수수 혐의가 추가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특혜성 지원을 정치권에 청탁한 것과 관련해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 등 현대 관계자들에 대해서도 형량이 낮은 남북교류협력법이 아닌, 뇌물공여 등 혐의가 적용돼 사법처리 수위가 높아질 수도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상희 기자 lilygardene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