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정밀부품을 생산하는 삼익LMS의 심갑보 대표이사 부회장(67)의 집무실엔 특별한 방이 하나 더 있다. 20여평이 채 안되는 이곳엔 녹음테이프 3천여개와 비디오테이프 1천여개,녹화·녹음 장비 등이 가득해 마치 방송사 자료실같다. 지난 30여년간 3천6백여회의 세미나를 찾아다니며 녹음·녹화한 것들이다. "기업경영을 잘 모르던 젊은 나이에 회사의 중책을 맡게 돼 걱정이 앞섰습니다.그래서 경영에 도움이 되겠다 싶은 세미나는 모두 찾아다녔지요." 대학교수가 꿈이었던 심 부회장은 1964년 영남대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잠시 대학 강단에 섰다가 부친이 작고하자 가업을 이어받아 4년여간 건설업체를 운영했다. 이후 70년에 장인이 경영하는 현재의 삼익LMS(당시 삼익공업) 상무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이때부터 그는 사흘에 한번꼴로 각종 세미나와 연수를 좇아다녔다. 영업·생산관리·무역 등 실무지식부터 경영전략·국제경제 전망 같은 폭넓은 주제까지 닥치는 대로 소화했다. 대한상의,한국경영자총협회 등이 3박4일 일정으로 여는 여름세미나는 지난 20여년간 한번도 거르지 않았다. 노사정위원회·중앙노동위원회·최저임금위원회 위원이기도 한 그는 역대 노동부장관이 참석한 세미나는 빠진 적이 없다. '세미나 광(狂)'이란 별명까지 얻은 그는 언제나 제일 앞자리에 앉기 때문에 웬만한 저명인사치고 그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질의·응답시간이 되면 첫번째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심 부회장이다. "실력 없이 처가 회사에서 일한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또 지방대 출신은 능력이 뒤질 것이라는 선입견을 실력으로 떨치고 싶었습니다." 그는 세미나를 다녀오면 녹음 테이프를 몇 번씩 반복해서 듣고 좋은 내용은 월요일 조회시간에 사내 임직원들에게 들려주며 공유한다. 심 부회장은 "세미나는 경제 흐름을 읽고 경영전략을 짜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60년대 영세 공구업체로 출발한 삼익LMS가 첨단 부품업체로 변신한 것은 세미나를 통해 얻은 기술집약산업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1천5백여 거래처와 신용거래를 하면서 불량채권 발생비율이 0.2%에 불과한 것도 세미나에서 배운 '거래처신용평가시스템' 덕분이다. 심 부회장은 요즘 그간의 활동을 정리하고 있다. 기업체 총수,전직 대통령,장관 등 저명인사들과 주고받은 질문과 답변을 모아 책으로 발간,토론문화 발전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한다. 또 기업이나 정부기관,대학 등으로부터 인기강사로 초청받아 지난 30여년간 쌓은 지식을 풀고 있다. "공부를 하는 것은 흐르는 물에 글을 쓰는것 같지만 결국은 지식으로 남습니다."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고 '정도·투명'경영을 강조하는 그에게서 '지식의 힘'이 느껴진다. 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