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29일 경북 포항시 남구 괴동 삼정피앤에이 사업장에는 뜨거운 열정과 감격이 흘러넘쳤다. 이 회사 노사 대표가 1천여명의 임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손을 맞잡고 21세기 비전으로 정한 '세계 제일의 철강제품 포장 전문리더'가 되기 위해 노사 상생의 발걸음을 힘차게 내디딘 것이다. 지난해 5월에는 회사 설립 후 최초로 임단협 무교섭 타결이라는 노사화합의 전기를 마련했다. 이 회사가 이처럼 상생의 노사협력에 이르기까지는 노사 모두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얼룩진 과거가 있었다. 지난 89년 2월 노동조합이 설립되기가 무섭게 강성 노조원들이 공장 생산라인을 전면 중단시켜버렸다. 회사측이 단체협상에 무성의하다는 게 이유였다. 회사측의 설득으로 불과 3일 만에 파업은 끝났지만 그 여파는 포항제철의 생산라인 대부분이 중단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삼정이 철강제품을 포장하지 않으면 포철 제품이 시중에 유통될 수 없는 구조 때문이다. 당연히 회사는 존폐의 기로에 설 만큼 위태로워졌다. 하지만 회사는 노조원들에게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았다. 오히려 노사 신뢰의 기반을 쌓으려 무진장 애썼다. 회사 정보를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낱낱이 공개했다. 최고경영자가 노조 대표와 상시적으로 만나고 분기마다 전직원 대상 간담회(일명 도시락 미팅)를 통해 고충 사항을 현장에서 해결하려 노력했다. 회사측의 이같은 열린경영에 사원들은 노사화합으로 보답했다. 노조 설립 5개월여 만에 강성 노조집행부를 몰아냈다. 당시 수석부위원장이던 신엄현 현 노사협의회 근로자 대표(2대)가 주도적 역할을 했다. 노조 불신임을 통해 강성 지도부를 사퇴시킨 신 대표는 보궐선거에서 노조위원장에 당선됐다. 조합원들의 두터운 신뢰로 13년간 두 번의 노조위원장과 노사협의회 대표를 역임하는 진기록을 낳았다. 노사가 똘똘 뭉쳐 품질 향상과 원가 절감 등에 나선 결과,89년 6백여억원에 불과하던 매출액은 8년여 만에 두 배로 껑충 뛰었다. 포항=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