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께서 입적하시고 나서 사람들이 스님의 열반송을 물으면 어떻게 할까요." "나는 그런 거 없다.정 누가 물으면 그 노장(老長) 그렇게 살다가 갔다고 해라.그게 내 열반송이다." 서암 전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은 지난 29일 이런 말을 남기고 열반에 들었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서암 전 종정은 조계종의 '대표 수좌'로 불릴 만큼 평생을 참선정진으로 일관했다. 젊은 시절 폐암 말기를 선고받고 죽음의 문턱에서도 정진을 거듭해 계룡산 나한굴에서 '본무생사(本無生死·본래 나고 죽음이 없다)'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이후에도 그는 전국의 선원을 다니며 금오 스님을 비롯 만공 효봉 한암 스님 등을 모시고 정진을 계속,뭇 수좌들의 귀감으로 손꼽혀왔다. 맹렬한 정진과 깊은 지혜에서 우러나는 명쾌한 법문,절도 있는 생활로 인해 그의 주변에는 늘 수좌들이 모여들었다. 지난 78년부터는 문경 봉암사 조실로 있으면서 수행환경을 바로잡기 위해 전국에서 유일하게 일반인의 산문(山門)출입을 통제,봉암사를 한국 최고의 선수행 도량으로 다져 놓았다. 오점도 없지는 않다. 지난 93년 종정으로 추대된 이듬해 터진 종단 분규때 3선 연임을 노리던 당시 서의현 총무원장을 지지하는 듯한 입장을 취했던 것. 이로 인해 종정 사퇴와 함께 탈종(脫宗)을 선언한 그는 거제도 삼천포 팔공산 태백산 등지에서 홀로 수행하다 봉암사 수좌들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재작년 봉암사로 돌아갔다. 서암 전 종정은 평소 '자비무적(慈悲無敵)'을 강조했다. 그는 "불법(佛法)이란 꿈에서 깨어나 깨닫고 바로 살라는 소리" "천당도 지옥도 자기가 만드는 것,욕망을 털어버리면 모든 게 환해진다"며 양심대로 살라고 가르쳐왔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