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 방화 참사 8일째를 맞아 지하철공사가 사고당시 종합사령팀과 기관사 사이의 무선교신 내용을 조작한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드러났다. 이에 따라 경찰이 새로 밝힌 사실 등을 중심으로 지난 18일 중앙로역에서 일어난 참사 순간과 대응 과정을 다시 구성해 본다. ▲1079호 열차에 불 오전 9시 52분 43초 처음 불이 난 1079호 전동차(대곡역→안심역)는 중앙로역으로 들어갔다. 13초정도 지나 역에 집입한 뒤 멈춰서는 순간 방화 피의자 김대환(56)씨는 객차에 휘발유를 뿌린 뒤 불을 질렀다. 오전 9시 53분 12초께는 1079호 전동차 문이 열리고 승객들이 내리기 시작했고 뒤이어 김씨가 옷에 불이 붙은 채 열차 밖으로 나왔다. 그 뒤 1079호는 화염에 휩싸였고 승객들은 열린 문을 통해 대피하기 시작했다. 기관사도 종합사령팀에 불이 난 사실을 알리지 않고 열차를 빠져 나왔다. ▲화재경보 무시, 불난 것도 몰라 불이 난 것으로 보이는 오전 9시53분께 종합사령팀 설비사령실 사무실에 있는 모니터 화면에는 `화재경보'라는 문자메시지가 긴급 전달되고 화재 경보음이 울렸다. 그러나 설비사령 3명은 당시 중앙로역 구내에 설치된 화재감지기가 불이 난 것을 인식하고 알렸음에도 평소에 오작동이 많다는 이유로 이를 무시했다. 당연히 운전 사령에게도 불이 난 것을 알리지 않았다. 이에 따라 불이 났을 때 역사의 환기.배기 시설을 긴급 작동하도록 하는 일을제 때 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게다가 운전사령들도 오전 9시53분께 1079호 열차에 불이 난 것을 모니터를 통해 알 지 못했다. ▲화재 신고 및 대응 오전 9시 54분 40초께 소방본부상황실에 열차에 불이 났다는 신고가 처음 들어왔다. 그런데도 화재 사실을 모르던 종합사령팀 운전사령은 불이 나고 2분여 뒤인 9시55분께 중앙로역 역무원의 신고를 받고 기관사와 무선 교신에 나섰다. 이 때 맞은 편 선로에는 1080호 전동차가 대구역을 출발해 중앙로역으로 들어왔다. 따라서 운전사령은 당연히 진행중인 열차를 정지시켜야 했음에도 기관사 최모(39)씨에게 "조심해 운전해 들어가라. 지금 화재가 발생했다"면서 역 진입을 허락했다. 오전 9시 56분께 1080호는 중앙로역에 도착했고 이 곳은 이미 연기와 유독가스로 가득차 있는 상황이었다. 객차 출입문이 잠깐 열렸고 기관사는 바로 가스와 연기유입을 막으려고 출입문을 닫았다. ▲단전과 급전 오전 9시 57분에는 기관사가 "지금 단전입니까"라고 묻고 운전사령은 "단전이니 방송 좀 하시고"라고 지시했다. 전동차와 역구내에 전원이 끊긴 것이다. 또 "연기나고 엉망입니다. 대피시킵니까. 어떻합니까."라고 물으나 운전사령은 "단전돼서 차 못 움직이잖아 지금..."이라고 대답했다. 이어 "지금 바로 출발합니다.급전되었다"고 하고 9시59분께 운전사령은 "그럼,발차"라고 대답해 `비상탈출' 동력인 '급전(急電)에 몰두했다. 이어 1080호 기관사 최씨가 "아-, 미치겠네", "지금 급전됐다 왔다갔다 하는데차 죽여서 살릴께요. 지금, 급전됐다 살았다가 죽었다 엉망입니다"고 다급하게 말한다. 운전사령은 "침착하게, 침착하게 하세요. 아 여보세요"를 반복한 뒤 무선교신은 끊겼다. ▲`마스컨 키' 뽑고 대피 그 뒤 기관사가 발차를 서두르나 전동차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이 때 1079호에서 1080호로 불길이 급속히 옮겨 붙었고 전동차는 화마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관사 최씨는 전동차 `마스컨 키'를 뽑아 대피했다. 일부 승객들도 잠긴 출입문을 부수고 빠져 나왔으나 대부분이 갇혔다. ▲운전사령과 기관사간 휴대폰 통화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사고당일 오전 10시 7분∼11분 사이 1080호 기관사 최씨와 운전사령이 핸드폰 통화를 했으나 운전사령이 한 말만 녹음돼 있다. "빨리 인자(이제) 차 그렇게 놓고... 차 판 내려 놓고(전원 공급 중단시키고)." "다른 데로 도망 가...올라가라고, 아 컴컴하고 그러니까. 판을 일단 내리고 승강장으로 대피하라고..." 이어 마지막으로 "차 죽여놓고(시동 끄고) 가야 돼"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전동차 전원을 끄거나 `마스컨 키'를 빼 가지고 대피하라는 뜻으로 풀이 할 수 있다. 따라서 최씨가 "승객들이 모두 대피할 줄 알고 평소 전동차를 떠날 때 하듯이 마스컨 키를 뺐다"고 한 말은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지금까지 최씨가 `마스컨 키'를 뽑은 시간은 오전 10시2분께로 알려졌는데 정확한 규명이 필요하다. 경찰은 지하철공사가 제출한 무선교신 테이프와 녹취록에는 오전 9시 55분부터만 기록돼 있으나 마그네틱 테이프 원본에 녹음된 오전 9시 55분 이전을 포함한 핵심 내용이 5∼6군데나 누락된 것을 밝혀내고 조사중이어서 그 결과가 나와봐야 정확한 진상을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진화 오전 10시 8분께 소방대원들이 현장에 도착, 진화에 나섰으나 정전으로 불이 나가고 유독가스가 가득차 역구내로 진입하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 오후 1시38분께 불은 완전 꺼졌다. (대구=연합뉴스) leek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