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딸 아이를 가슴에 묻어야만 할 것 같습니다." 23일 사고대책본부가 마련된 대구 시민회관 내 실종자 가족 대기소 한 쪽에서 흰 가운을 입고 자원봉사에 나선 약사 배은호씨(49.경북 영천시)는 사고 발생 엿새째 소식이 없는 딸(배소현.20.영남대 생화학과 2년)을 찾아나서는 대신 같은 처지의 실종자 가족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아버지를 따라 약사가 되려고 약대 편입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시내에 있는 학원에 다니던 딸은 여느 때처럼 지하철을 타고 학원으로 향하다 변을 당했다. 설마 했으나 지하철 중앙로역 폐쇄회로TV 화면을 통해 딸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를 유난히 따랐던 딸이 금방이라도 방긋 웃는 모습으로 뛰어올 것만 같았는데 배씨는 이제 체념한 상태다. "남매를 키우며 다복하게 살아온 지난 20년 세월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만 저보다 더 딱한 실종자 가족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는 자원봉사에 나서게 됐습니다." 딸을 먼저 보낸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는 중년의 약사는 잃어버린 가족을 찾느라 며칠 밤을 뜬 눈으로 지새워 탈진 상태인 실종자 가족들을 상대로 건강상담에 여념이 없다. 대구=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