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신 님들'의 영혼과 슬퍼하는 유족의 마음을 달래주려는 듯 가냘픈 비가 내린 22일 오후. 대구지하철 대참사의 현장인 중앙로역 역사내 그을린 벽 아래에 시민들이 놓고 간 하얀 국화가 소복이 쌓여 있었다. 10여명의 시민들은 벽에 나붙은 두 장의 편지를 열심히 읽고 있었다. 두 편지는 대참사로 실종된 이경희(58.여.대구시 동구 금강동)씨의 남편 배봉조(58)씨와 딸 민(27)씨가 각각 쓴 것이다. 딸이 쓴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엄마딸 민이 왔어요. 동생 진수는 화요일 날 귀국한대요. 별 고통없이 임종을 맞았죠? 엄마 전날에 같이 목욕갔다 왔잖아요. 목욕하고 임종 맞으면 좋은 곳에 간대요. 부디 생로병사의 고통없는, 다시는 아픈 허리 때문에 고생 받지 않는 곳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그토록 좋은 엄마를 저에게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또 남편이 아내를 그리며 쓴 편지는 이렇다. '당신에게. 여태껏 호강 한번 해드리지 못하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 그처럼 살림걱정 자식걱정하면서 너무나 열심히 살았잖아. 이 세상 어느 가정의 부인이 당신만큼 절약하면서 자나깨나 자식 잘되라고 빌고 빌며. 이것이 무엇이냐. 저 세상 가서는 여보 모든 걱정 놓고 극락왕생하시오. 한맺힌 것 모든 걱정을 버리고 고이고이 극락왕생하기 바라며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며... 당신 남편 배봉조.' 편지를 읽은 시민들은 두 뺨에 흐르는 눈물을 연방 닦아 냈다. (대구=연합뉴스) parks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