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 방화 대참사는 뇌졸중 등으로 직업을 잃은 뒤 우울증을 앓으며 세상을 비관해온 50대 장애인의 자포자기적이고 맹목적인 앙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사건을 수사중인 대구 중부경찰서에 따르면 방화 용의자 김대한씨(56.무직.대구 서구 내당3동)는 개인택시 운전을 하다 우울증세를 보여 1999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대구시내 한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택시기사 일을 하기 전에는 화물차 운전사(6년), 행상 등을 했다. 우울증 치료를 받던 2001년 4월에는 중풍까지 겹쳐 신체 우측 대부분이 마비되고 실어증까지 얻어 '뇌병변 장애2급' 판정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가족으로 부인(48.청소원)과 1남(회사원) 1녀(학원강사)를 두고 있다. 사건 발생 직후 대구 중부경찰서에 출두한 김씨의 아들(27)은 "아버지가 심한 우울증으로 자포자기하는 언동을 자주 보여왔고 정상적인 판단능력이 없었다"며 "뇌졸중 치료를 받은 뒤 반신불수 증세가 나타나자 '병원이 치료를 잘못했다'며 평소 병원에 불을 지르겠다고 말해 왔다"고 밝혔다. 사건당일 가족들이 일터에 나갈 때 김씨 혼자 집에 있었으며 가족들은 "아버지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들 김씨는 "오전 8시쯤 출근하기 전 아버지가 자고 있기에 깨워 '회사에 다녀오겠다'고 말한게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씨는 사건 직후 대구 조광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던 중 함께 실려온 환자들에 의해 범인으로 지목돼 경찰에 체포됐다. 김씨의 초기 치료를 맡았던 조광병원 응급실 관계자들은 "환자는 도착 직후부터 횡설수설하는 등 정신이 온전치 못한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하철에서 불을 지르는 과정에서 오른쪽 손과 발에 각각 2도 화상을 입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유독가스를 너무 많이 마신 데다 저체온증세를 보여 이날 오후 1시쯤 경북대병원으로 옮겨졌다. 김씨는 병원을 찾아온 경찰에게 자신이 방화범임을 순순히 인정했으나 범행동기 등에 대해서는 '나는 말을 하지 못한다'며 일절 입을 다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