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반세기만에 북녘땅이 남쪽 관광객들을 맞이했다. 14일 오후 1시. 남방한계선의 통문이 열리는 순간, 통일전망대 도착 이후 내내 긴장감에 눌려있던 관광객들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군사분계선(MDL)을 지나 북쪽에 들어간다는 흥분감을 감추지 못했다. 입춘이 지났고 대동강이 풀린다는 우수를 앞두고 있지만 비무장지대(DMZ) 주위에는 대부분 눈에 덮인 겨울 풍경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한때 사람들이 살았을 이곳은 무성한 갈대밭과 숲으로 변하면서 50년동안 민간인의 발길을 거부한 채 고라니와 멧돼지 등 야생동물들에 자리를 내준 지 오래다. MDL에서 300m를 더 가니 북방한계선이다. 소총을 휴대한 구릿빛 얼굴의 북한 병사 두 명이 길가에 부동 자세로 서 있다가 버스를 맞이했다. 임시 남북출입관리연락사무소(CIQ)에서 길놀이패의 환송을 받으며 떠나올 때와는 사뭇 다른 긴장감이 버스 안에 감돌았다. 3중으로 된 통문이 열리는 순간 남북을 잇는 실핏줄에 뜨거운 피가 흘렀지만 그 피가 한반도 전역에 전달되기까지는 가야할 길이 많이 남은 듯했다. 어린 병사들의 호기심 어린 눈을 뒤로하고 북방한계선을 지난 버스는 폭 4m의 '7번 국도'라 부르는 비포장 도로를 계속 달렸다. 아직 공사 흔적이 주변 여기저기 남아있는 도로는 버스 1대가 겨우 지날 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 북녘땅이 고스란히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백과사전에서 손바닥 크기도 안되는 사진으로만 볼 수 있었던 감호가 손에 잡힐듯한 거리에서 겨울 바람을 맞으며 관광객들을 맞았다. 이야기책 속 선녀와 나무꾼전설의 배경이 바로 감호다. 경포호보다 조금 작은 이 호수는 봉래(蓬萊) 양사헌(楊士彦)이 집을 짓고 살며'천하명동도 이보다 못하다'고 감탄했던 곳이다. 물이 깊지 않아 얕은 곳은 바지를 무릎까지만 걷으면 건널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얼어붙은 감호의 주위에는 산불 피해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감호에서 시선을 거두니 금강산 끝자락인 적벽산이 눈에 꽉찼다. 갑자기 도로가 넓어졌다. 군인들이 버스를 세웠다. 인민군 복장에 총을 휴대한 군인들이 버스에 올라 인원을 점검했다. 승객중 한 명이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말을 건네자 "안녕하십니까" 짧게 대답했다. 북방한계선에서 처음 초병을 봤을 때보다는 긴장감이 다소 누그러졌다. 점검을 마친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부산아시안게임 때 인기를 모았던 '청년 여성 취주악단'이 구선봉을 배경으로 임시도로가에 선채 '반갑습니다', '우리의 소원' 등을 연주하며 관광객들을 맞았다. 왼쪽으로 적벽산, 오른쪽으로 낙타등처럼 구부러진 구선봉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선 이 봉우리는 꼭대기에서 아홉 신선이 바둑을 두며 놀았다는 전설 때문에 구선봉이란 이름이 붙었다. '아,사람이 살고 있구나.' 고성군이 보였다. 기차가 다니지 않는 옛 역사(驛舍)와 토담집들. 60~70년대 시골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마을은 핵문제로 시끄러운 바깥 세상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듯 그저 평화롭게만 보였다. 영웅해금강 중학교가 보이고 학교 담 아래서는 아이들이 겨울 햇볕을 받으며 관광버스 행렬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구읍리 마을과 온정천이 보일 때 버스는 이미 삼일포를 지나고 있었다. 옛날 외국 장수가 이곳의 천하절경에 빠져 사흘동안 호숫가에서 머무르다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여전히 기암괴석, 백사장, 소나무 숲이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삼일포를 지나니 포장도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해로 관광 때 관광객을 맞이했던 곳이다. 1시간여를 달려온 일행들은 낯익은 풍경을 접하고 나서야 잠시 몸을 뒤척였다. 철책선만 없다면 서울에서 불과 3~4시간이면 닿을 곳. 그곳에 오기까지 무려 50년이걸렸다. 장전항에 마련된 북측 CIQ는 단체 관광객을 맞아 시장처럼 북적거렸다. 공터에 울리는 '반갑습니다'라는 노래만 없다면 남측 여느 항구의 모습과도 다름이 없었다.관광객들도, 사무소 직원들도 서먹서먹하지만 얼굴엔 홍조가 돌았다. '환영합니다' 소박하게 내걸린 현수막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통관 절차를 마친 관광객들은 기대에 부푼 표정으로 버스에 다시 나눠타고 온정각으로 향했다. CIQ 주변에는 겨우내 쌓여있던 눈이 햇볕에 녹아 작은 물줄기들을 이루고 있었다. (금강산=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