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은 올해도 경제분야의 키워드로 꼽힌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기술없이는 선진국 대열에 오를 수 없다. 굳이 '테크노 헤게모니'를 언급할 필요가 없다. 과학기술은 이제 글로벌 시대의 생존을 결정짓는 최대 변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다르다. 정부의 R&D 투자를 통틀어도 미국의 대기업 1개사에 못미친다. 과학기술과 이공계 기피현상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산업계에선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지 못해 안달이다. 과학기술과 이공계를 살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홍창선 한국과학기술원(KAIST) 원장으로부터 그 해법을 들어본다. ----------------------------------------------------------------- ▲ 홍창선 KAIST 원장 =이공계 지원이 줄어드는 추세가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큰 걱정거리는 우수 학생들이 의학,한의학 계열로 쏠리는 현상입니다. 장학금 지원 등 대책이 나왔지만 단기적 처방에 그칠 것입니다. 심층적인 원인진단에 따른 근본 처방이 필요합니다. 스타 과학자가 있었는가,과학기술인이 국가 지도층으로 활약하고 있는가, 직업 안정성과 사회적 처우가 적당한가, 이공계교육이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고 있는가 등을 짚어봐야 합니다. ▲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교육자체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습니다. 대학 커리큘럼이 산업현장에서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기술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미국에서는 기업과 대학간 관계가 긴밀합니다. 그러나 국내 대학은 산학간 괴리감이 큽니다. 미국 박사와 국내박사간 차이가 납니다. 미국 박사는 필요로 하는 기술을 공부하며 영어도 능통합니다. 미국 동문들과의 휴먼 네트워크도 끈끈합니다. ▲ 홍 원장 =KAIST에는 고시공부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최근 여학생이 최연소로 고시에 붙고 변리사 시험에도 최연소 합격자가 나오긴 했지만…. 과학고 상위권 학생들이 의학계열로 많이 지원하고 있습니다. KAIST 학생중에도 그런 사례가 있습니다. 뭔가 대책이 필요합니다. 엔지니어를 어떻게 길러야 하느냐가 미국에서도 10년 전에 과제로 부각됐었습니다. 기본을 충실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팀워크가 필요합니다. ▲ 윤 부회장 =교육은 백년대계입니다. 이공계 교육 뿐 아니라 교육 전체가 문제입니다. 엄청난 사교육비를 투입하면서도 정보지식화 사회를 이끌어갈 창의적 인재를 키워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교육문제 해결에 나서야 합니다. 정보지식화 사회에서는 과학기술이 경제력, 즉 국력이라는 것을 확실히 인식해야 합니다. 미국도 교육개혁을 대대적으로 한 적이 있습니다. 과학기술이 있어야 21세기 정보지식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국민적 컨센서스를 만들어야 합니다. 과학이 일상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공영방송중 하나는 황금시간대에 과학프로그램을 내보내고 과학전문채널을 만들어야 합니다. ▲ 홍 원장 =우수한 사람들이 왜 이공계에 안 옵니까. 의사나 변호사는 국내에 있는 재화, 즉 파이를 서로 뜯어먹습니다. 이공계 출신들은 수출도 하고 뭘 벌어와야 합니다. 이공계 출신의 월급은 유리봉투입니다. 조세 정책에 문제가 있습니다. 연구원에 대한 소득공제가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금융기관 초봉이 삼성전자를 앞지릅니다. 이를 사회적인 문제로만 볼수 있습니까. ▲ 윤 부회장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병역 혜택을 받습니다. 왜 이공계는 안 됩니까. 정부는 균형성장과 배분에 앞서 성장엔진을 먼저 키워야 합니다. 성장도 안 됐는데 배분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이 가진 유일한 자원인 인적 자원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변호사가 1만명을 먹여 살리지는 않습니다. 진짜 우수한 과학기술자는 몇 만명을 먹여 살립니다. 노무현 정부의 최대과제는 교육개혁입니다. 우선 중고등학교 교육부터 개선해야 합니다. 과학고 같은 영재교육 기관과 특수학교를 활성화시키는게 급선무입니다. 영재교육 문제를 풀지 않으면 미래가 없습니다. 대학입시도 대학자율에 맡겨야 합니다. 대학이 너무 많습니다. 4년제, 2년제 통틀어 3백40여개나 됩니다. 대학 나와서는 3D분야로 안 갑니다. 외국인 근로자를 데려와야 합니다. ▲ 홍 원장 =교육이 너무 과학기술쪽으로만 치우친데 대해 자성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석.박사 과정을 운영하면서 연구원이나 학자가 된다는 전제 아래 교육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3분의 2 정도는 연구소가 아닌 산업계로 진출합니다. 팔릴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업이 필요로 하는 지식을 커리큘럼에 제대로 못 집어넣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직업이 2만∼3만가지입니다. 삼성그룹내에서도 계열사가 여러 개입니다. 어디가서 일할 줄 알고 거기에 맞추겠습니까. 대학을 나온 사람이 그런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도록 해주는게 급선무입니다. ▲ 윤 부회장 =필요한 우수 인력이 국내에 없으면 해외로 스카우트하러 가게 됩니다. 삼성 연구부문의 경우 인도와 중국 미국에 각각 3백명, 일본과 영국에 각 1백명, 러시아에 50명이 있습니다. 인도 중국 러시아 등은 늘려나가야 합니다. 이들 가운데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일류기업에서 5∼10년간 근무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창의력이 있고 영어까지 되니까 휴먼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빠르게 획득할 수 있습니다. ▲ 홍 원장 =중국의 칭화대와 교류를 확대하려고 합니다. 차세대 지도자들과 교류하고 사귀어야 합니다. 너무 미국 일변도입니다. 앞으로는 중국이 중요해질 것입니다. 프랑스 에콜폴리테크니크와도 교류하고 있습니다. 교육내용이 독특합니다. 입학한 뒤 교육을 안 받고 군사훈련을 받습니다. 프랑스를 움직이는 지도층 가운데 이곳 출신들이 많습니다. ▲ 윤 부회장 =중국의 힘은 전세계에 퍼져 있는 화교 과학자로부터 나옵니다. 지난해 선발한 삼성이건희장학재단의 장학생은 이미 대학입학허가를 받은 사람을 선정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공부하러 갈 사람들입니다. 삼성으로 와야 한다는 조건도 없습니다. 1백명중 20%는 인문과학, 30%는 물리 수학 화학 순수과학, 40∼50%는 응용과학 출신입니다. 스타 CEO가 많이 나와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성리학 때문에 사농공상 전통이 남아 있습니다. 고시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고시제는 공무원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입니다. 공무원 임용제도를 바꿔 공개응모제도를 통해 뽑으면 사회가 많이 바뀔 것입니다. 공대를 졸업해서도 로스쿨에 가게 해야 합니다. ▲ 홍 원장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과학기술을 국정의 중심에 두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정부의 3급이상 기술직 임용 목표제를 도입하겠다고 했습니다. 과학기술자가 정책결정에 참여토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R&D 예산을 전체의 7%로까지 늘리겠다고 했습니다. 지켜보겠습니다. ▲ 윤 부회장 =이공계 대학에서도 경영학 회계학을 가르쳐야 하며 영어는 필수적이어야 합니다. 중.고등학교 때 상업선생님한테 복식부기까지 배운게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그런 것이 필요합니다. 교육의 백년대계를 위해선 CEO가 확실히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의 CEO인 대통령이 인재를 키우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청와대에 과학기술특보나 교육특보를 두고 몇십년 앞을 보고 집중적으로 신경써야 합니다. 그래야만 일류국가가 됩니다. ▲ 홍 원장 =병역특례도 확대하고 교육에도 과감하게 투자해야 합니다. 장학금도 더 줘야 합니다. 공부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 외국 못가는 교수도 지원해야 합니다. ----------------------------------------------------------------- < 윤종용 부회장 약력 > 1944년 경북 영천 출생 경북대 사대부고,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69~92년 삼성전자 비디오사업본부장, 상무, 종합연구소장, 가전부문사장 92년 삼성전기 사장 97년 삼성전자 총괄 대표이사 사장 2000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제8대 한국정보산업연합회 회장 < 홍창선 원장 약력 > 1944년 서울 출생 수원고, 연세대 기계공학과 졸업 77~79년 NASA(미 항공우주국) 리서치센터 연구원 79년 KAIST 기계공학과 항공우주전공 교수 94~96년 KAIST 교무처장, 연구처장 97~98년 KAIST 공학부장 겸 기계기술연구소장 2001년 KAIST 원장 정리=송대섭 기자 dss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