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예산을 들여 개발도상국인 우즈베키스탄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납품가격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80여억원을 챙긴 악덕 기업인이 검찰에 적발됐다.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지원 대상국인 우즈베키스탄으로부터 "저질.중고품이 많다"며 항의를 받는 등 국제적인 망신까지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지검 외사부(안창호 부장검사)는 2일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차관사업의 하나로 우즈베키스탄에 현미경 비커 등 과학기자재 3백84억원어치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88억여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어학실습기자재 업체 '오리엔트AV' 대표 홍모씨(60)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같은 혐의로 홍씨의 이종사촌인 HRD(주) 대표이사 이모씨(52)와 매출을 조작하는 수법으로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오리엔트AV 이사 김모(43) 신모(46)씨를 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한국과학기기공업협동조합(과기조) 이사장으로 재직하던 홍씨는 2000년 재정경제부가 중소기업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중소기업중앙회 산하인 과기조를 '우즈베키스탄 과학기자재 현물차관 사업' 주체로 선정하자 과기조 이사회를 통해 자신이 운영하는 오리엔트AV에 사업 물량을 전부 배정했다. 오리엔트AV는 다시 44개 조합회사들에 하도급을 주고 싼 값에 기자재를 납품받아 우즈베키스탄에 공급했으나 수출입은행에 납품가를 부풀려 신고하고 수출대금을 받는 방식으로 차익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비커의 경우 개당 8원에 우즈베키스탄에 공급했는데도 수출입은행에는 10원에 공급한 것처럼 꾸몄다고 설명했다. 홍씨가 공급한 물건 중 1백22억원어치는 당초 정부가 우즈베키스탄과 계약한 물품과 다르거나 저질 또는 중고품인 것으로 드러나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우리 정부에 항의하기도 했다. 정부는 지난 87년부터 개발도상국의 경제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EDCF를 설립, 매년 2천억∼3천억원씩 집행하고 있으나 이번 사건으로 '한국의 높아진 위상을 토대로 후진국을 지원한다'는 정부의 의도가 일부 퇴색됐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