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한상공회의소와 통계청은 기업들의 인력 채용과 관련해 엇갈리는 자료를 내놓았다. 먼저 대한상의가 서울지역 제조업체 2백20개사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응답업체의 73%가 핵심인력 부족으로 애를 먹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통계청이 발표한 '11월 고용동향' 자료에서는 대학을 졸업한 19만7천명(3.3%)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졸업과 동시에 '청년 실업자' 신세가 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은 쓸만한 사람이 모자라고, 대졸자들은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서 제각각 고충을 겪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엇박자가 나는 까닭은 뭘까.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그 해답을 내놨다. 작년 12월 회원사 인사담당 책임자 3백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대졸 신입사원들의 지식 및 기술 수준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수준의 26%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신입사원들의 학력은 높지만 자질은 대부분 '함량미달'이라는 얘기다. 기업들이 신입사원을 재교육시키는데 연간 2조8천억원을 지출하고 있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 99년 연간 교육비로 국내총생산(GDP)의 6.8%를 지출, 교육비 지출비중이 30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그 많은 돈을 쓰고도 기업들은 인재를 만들기 위해 돈을 더 써야 하는 것이 한국의 교육 현실이다. 최용수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교육시장은 대표적인 고비용 저효율 구조"라며 "교육시장 개혁을 통해 시장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해야만 국가 전체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교육시장에도 경쟁원리 도입해야 이주경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 책임조사역은 "대학이 경쟁력 있는 인재를 양성하지 못하는 까닭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관치(官治)"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교육서비스의 종류에서부터 학교별 정원, 등록금, 교육과정 등 전반에 시시콜콜 개입하면서 대학 교육이 획일화됐고, 경쟁이 끼어들 자리가 없게 됐다는 지적이다. 특히 서울대를 필두로 한 대학간 서열구조가 고착화되면서 초.중.고등학교 교육은 소수 '명문대' 입학을 목표로 한 암기식 입시교육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이주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이런 교육시스템 아래에서는 아무리 많은 교육비를 들여도 결국은 창의력이나 사고력과는 무관하게 문제 푸는 기술을 가르치는데 허비될 뿐"이라며 "교육을 대학 등 시장주체들에 온전하게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정화 홍익대 교수(교육인적자원정책위원회 선임위원)는 "지난 74년부터 존속돼 온 고교 평준화 제도를 개선해 사립고등학교에 학생 선발과 교육과정 등을 스스로 결정하도록 자율권을 부여해야 한다"며 "대신 국가 재정은 공립학교의 질을 높이는데 집중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 폐쇄적인 고시제도 뜯어고쳐야 한국 교육의 또 다른 병폐는 고시제도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비공식 조사통계에 따르면 국내 4년제 대학 재학생중 30∼40% 가량이 고시를 준비중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완규 이공계살리기운동본부 운영위원장(생물산업협회장)은 "고시는 한번의 승부로 인생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에 우수한 인력들이 고시에 매달리고 있는데 이는 국가 전체적으로 큰 손실"이라며 "고시에 의존하는 고급 공무원 채용 방식을 다양화하는 등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여성인력 활용방안 강구해야 국가경제의 생산성 증대와 전문 핵심인력 양성을 위해서는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낙후돼 있는 여성인력과 고령인구에 대한 활용을 한층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01년 기준 48.8%로 남성의 73.6%에 크게 뒤떨어진다. 특히 대졸이상 고급 인력은 출산과 육아로 노동시장을 떠난 뒤 복귀가 이뤄지지 않는 경력단절 현상이 심각하다. 정부는 고급 여성인력 활용을 위해 △성차별적인 제도 개선 △육아.보육시설의 대대적인 확충 △보육비용에 대한 재정지원 확대 △출산 전후 휴가급여 및 육아휴직제도 개선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수진 기자 park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