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교통사고일 뿐인데 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을 없애라고 주장해 사태를 확산시킵니까?" 6일 오전 워싱턴 내셔널 프레스 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AP 텔레비전 기자는 여중생 사망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 방미투쟁단 관계자들에게 이 같이 질문했다. 이날 어렵게 마련한 기자회견에 참석한 단 한명의 외국기자인 그의 질문에 범대위 관계자들은 황당한 느낌과 함께 절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것이 일반 미국인들의 인식이라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범대위 관계자는 "그 길은 좁아서 탱크나 장갑차가 다니게 돼 있는 길이 아니었다"면서 "명백한 과실치사 사건을 미국 군사법원에서 미군 배심원들의 참석하에 무죄로 판결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이런 일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 SOFA를개정하자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백악관 앞에서 이들의 가슴은 더욱 답답해졌다. 백악관 정문에서 부시 대통령 면담과 항의서한 접수를 요구하자 경비원들은 이들을 몸으로 제지하며 "사전 약속이없으면 공보실에 전화하라"면서 전화번호를 건네줬다. 그러나 그 전화에는 응답기만이 대답할 뿐이었다. 방미투쟁단장인 한상렬 목사는 "국민의 자존심과 민족주권을 생각할 때 이대로갈 수는 없다"면서 예정에 없던 혈서쓰기와 단식농성을 강행하겠다고 고집했다. 한목사는 영하의 찬바람이 부는 백악관 앞 거리에서 숨진 심미선, 신효순 등 두 여중생의 영정을 놓고 `민족자주'라는 글씨를 피흐르는 손가락으로 쓴 뒤 눈을 감고 기도를 드렸다. 한 목사는 단식농성에 들어가면서 `국민여러분께 올리는 글'을 낭독했다. "우리민족을 업신여기고 유린하는 오만불손한 미국 정부는 회개해야 합니다. 일시적 미봉책으로 여전히 농간을 부리는 미국 정부의 행태를 우리는 더 용납할 수 없읍니다.효순 미선 살려내라. 민족주권 민족자주를 함께 외칩시다." 백악관에서는 이들이 시위 움직임을 보이자 10여명의 경찰과 비밀경호요원 1명을 내보내 상황을 파악하고활동을 제지하는 등 경계하는 기색을 보였다. 범대위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전달하려 했던 항의서한은 "한국민이 주한미군의 무죄판결 무효화를 요구하는 것은 우리나라 주권과 국민 자존심이 무참히 짓밟혔기 때문"이라면서 "귀하가 진정으로 한국민에게 사과하고 두 여중생 사건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우선 기만적인 미군 군사재판이 무효임을 선언하고 살인미군을 한국 법정에서 처벌받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서한은 접수 거부를 당해 공허한 외침으로 끝났다. 범대위는 또 이날 조셉 바이든 상원의원을 만나려 했으나 바이든 의원의 바쁜 일정 때문에 그의 보좌관들을 만나는데 만족해야 했다. 범대위는 7일 오후 1시 단식농성을 끝내면서 백악관 앞에서 다시 시위를 벌인 뒤 8일 로스앤젤레스로 출발한다. (워싱턴=연합뉴스) 김대영 특파원 kd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