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하느니 유학갈랍니다.' 올해 수능 채점 발표 결과 재학생 성적이 지난해보다 하락한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재수보다 유학을 떠나려는 고3 수험생들이 늘고 있다. 이는 내년 입시부터 주요 대학들이 재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수시모집 비율을 전체 정원의 절반 가까이 늘려 재수생에게 불리한 데다 재수 실패 때엔 기존과 완전히 달라지는 '2005학년도 입시'를 봐야 한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 청담고의 경우 벌써부터 한 반에 1~2명씩 진학담당 교사에게 유학상담을 신청하고 있는 상황이다. 각 학교 교사들은 본격적인 진학상담이 시작되면 유학상담을 하는 학생이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서울 A여고 3년생인 B양은 "고교 3년 동안 반에서 1,2등을 다퉜지만 점수가 폭락해 원하는 대학에 지원하기 힘들 것 같아 유학을 떠나기로 결정했다"며 "하향 지원이나 재수도 생각해 봤지만 정시에 합격한다는 보장도 없고 재수하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라는 부모님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한 반에 1∼2명씩 유학을 고려중인 서울 강남권 고등학교의 경우 교사들이 '무작정 외국에 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시지원을 적극 권유하고 있지만 학부모들의 뜻을 꺾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구정고 모 교사는 "유학을 가더라도 우선 국내에서 대학 경험을 쌓고 가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젊은 학부모들의 정보 수준이 높고 유학에 대해 잘 알고 있어 조언만 할 뿐 결정은 학부모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설명했다. 서울시내 일부 어학원에는 벌써부터 유학 관련 정보를 문의하는 학부모와 고3생들이 줄을 잇고 있다. 서울 강남의 K유학원 관계자는 "수능이 끝난 후 내신성적은 좋은데 수능점수가 안 나왔다며 유학상담을 신청하는 학부모들이 늘고 있다"며 "대학별 원서접수와 합격자 발표가 시작되면 문의가 쇄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종로 H유학원 관계자도 "수능 시험 전인 지난 10월부터 유학 관련 문의가 꾸준히 이어졌다"며 "특히 수능이 끝난 후 문의가 상당히 많았다"고 전했다. 강남 E유학원 관계자는 "요즘은 아예 졸업 전에 유학 관련 문의를 한 뒤 졸업 후 바로 미국 대학입학시험(SAT)과 토플 등을 준비해 유학을 떠나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수능 충격으로 인해 충분한 준비없이 무턱대고 해외행을 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게 교사들의 입장이다. 단대부고 3학년 부장 오성관 교사는 "한국에서 대학에 못 간 학생은 외국에 나가서도 실패하기 쉽다"며 "성적이 안 좋은 학생들은 하향 지원을 해서라도 국내 대학에 가는 편이 낫다"고 강조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