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채점 결과보다도 10점이나 더 떨어졌어요. 전체 석차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도대체 어디를 지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지난달 실시된 2003학년도 수능 채점결과가 공개된 2일 성적통지표를 받아든 일선학교의 대부분 고3생들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충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수능성적이 전반적으로 하락한 가운데 수험생의 분포가 최상위권과 하위권으로 양분, 어느때보다도 눈치경쟁이 심할 것이라는 전망으로 수험생들은 벌써부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전반적인 성적하락속에 재수생들의 초강세로 정시모집 상위권 인기학과의 경우 `재수생 독식'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가시화돼 재학생들은 더욱 난감한 표정이었다. 더구나 지난해부터 교육부가 개별석차를 비공개, 자신의 정확한 위치를 모르게된 수험생들은 같은반 친구들에게 `도대체 이 점수로 어느 대학에 지원할 수 있냐'며 답답함을 호소하다가도 이마저도 이내 포기하는 모습이었다. 교사들도 학생들에게 배포할 성적통지표를 미리 확인하고 한숨을 짓는 등 교무실마저 침울한 분위기였다. 이에 비해 재수생들은 자신의 출신교에서 성적표를 받은 뒤 논술과 면접구술 특강을 듣기위해 학원으로 향하는 등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였다. ◇고3교실 침울한 분위기 = 수능통지표가 일제히 배포된 이날 고3교실은 일부학생들이 울음을 참는 훌쩍임을 제외하고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침울한분위기였다. 가채점결과보다 성적이 더욱 많이 떨어진 학생들과 수시합격자중 자격기준으로사용되는 수능 최저점수에 못미쳐 합격이 취소된 학생들은 허망한 듯 아예 책상에엎드린채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 중대부고의 모 교사는 "한반에서 수시모집에 합격해놓고도 수능점수가 나빠 탈락한 학생이 1∼2명씩 나온다"고 말했다. 이미 재수를 결심한 학생들은 비교적 담담한 표정이었지만 1년간 다시 입시준비에 매달려야한다는 생각에 고개를 젓는 모습이었다. 수도여고 3년 김모(18)양은 "1등급이 나왔지만 과탐정수가 낮아 목표로 했던 의대는 힘들것 같다"면서 "1년더 공부해 다시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재수를 생각하지 않았던 학생들 가운데서도 자신의 성적을 확인한 뒤 재수쪽으로 기우는 경우가 많았다. 중대부고 3년 주모(18)양은 "가고싶은 대학을 가지 못할 것 같아 부모님은 재수를 권유하시는데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면서 "선생님과 상의한 다음 재수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예상대로 좋은 성적을 거둔 것으로 나타난 재수생들은 가배치기준표에 따라 미리 정해둔 지망대학의 입시요강에 따라 논술과 구술고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모습이었다. 서울대 의대를 지망하는 재수생 차한규(22)씨는 "변환표준점수로 377점을 받았고 함께 재수학원에서 공부한 친구 7~8명들도 모두 1등급 안에 든다"면서 "학원에다니면서 면접고사 준비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성학원 한남희 상담차장은 "일선 학교들은 성적발표 이후 많이 위축됐다고 전해들었지만 재수생들은 이미 자신의 정확한 위치를 짐작해왔기 때문에 각 대학입시요강에 따른 정시준비에 열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학지도 대혼란 = 학생들을 다독이며 개별 면담에 들어간 교사들은 학생별로일일이 영역별 점수를 합산해 총점을 따지고 영역별 가중치를 계산하는 등 천차만별인 각 대학의 입시요강에 맞춘 입시전략을 짜느라 진땀을 뺐다. 교사들은 이날 학생들을 귀가시킨 뒤 긴급회의까지 소집하며 학생들의 성적에맞춘 지원전략을 마련하려 고심했지만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수험생이 자기 성적의대체적인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총점기준 누가성적분포표가 공개되지 않아 역시 해답을 찾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올해 수험생의 분포가 최상위권과 하위권으로 양분, 상하위권을 가리지 않고 눈치경쟁이 극심할 것으로 전망되자 일부 교사들은 자체적인 배치표 작성을 포기하고사설입시기관의 배치표 입수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각 일선학교 교사들은 "각 대학별로 전형요소가 달라 그렇지 않아도 진학지도가어려운 마당에 총점 분포까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진학지도를 해야 할 지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서울외고 모 교사는 "오늘 점수를 분석한 다음에 모레부터 본격 상담에 들어갈예정"이라면서 "총점분포표가 발표되지 않기 때문에 사설기관의 정보를 많이 참고할수 밖에 없고 학생들도 사설학원에 문의를 따로 하는 상황이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일부 교사들은 진학지도는 사설학원의 자료에 의존하고 논술과 구술고사 지도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H여고 진학담당 교사는 "수능 직후부터 운영해온 논술과 심층면접 프로그램을계속하는 것외에는 실제로 학생들을 위해 해줄 것이 없다"고 말했다. 경복고 모 교사는 "수능직후 재수생에 비해 재학생의 성적이 많이 떨어졌다는소식에 너도나도 1년 더 해보겠다고 나섰다"면서 "일단 대학에 합격해 놓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교사 입장과 학생들의 생각이 달라 진학지도가 무척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고일환 이상헌 김상희 황희경 기자 kom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