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부품업체 디에이블 등 증권거래소 상장기업이 포함된 7천8백개 기업이 회사를 설립하거나 유상증자를 할 때 1조8천억원의 주금(주식 납입금)을 거짓으로 납입한 혐의가 포착돼 검찰이 전면적인 수사에 나섰다. 거래소 상장기업이 가장 납입 혐의로 적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지검 형사9부(이인규 부장검사)는 27일 주금 가장 납입 혐의가 있는 7천8백개 기업을 포착, 이 중 디에이블 대표 이규호씨(39)와 전 대표 김인선씨(40.회계사)를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이들 7천8백개 기업이 가장납입을 통해 설립 또는 증자한 규모가 1조8천억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검찰은 또 S,C,H,M사 등 15개 상장·등록사를 포함해 가장 납입 규모가 30억원이 넘는 20개 기업을 상대로 1차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들에 가장 납입 자금을 댄 사채업자와 M&A(기업인수합병) 전문 사모(私募)펀드 등으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 사모펀드를 통한 가장 납입 =구속된 이씨 등이 디에이블(옛 대원제지공업)의 경영권을 빼앗은 것은 지난 99년 3월께. M&A 전문가로 활약하던 이들은 '주가를 높여 주겠다'며 소액주주들의 의결권을 위임받아 주주총회에서 기존 대주주인 김모씨를 누르고 경영권을 확보했다. 이씨 등은 이듬해 제지회사였던 디에이블의 업종을 컴퓨터 관련업으로 바꾸고 회사명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했다. 회사를 장악한 이씨 등은 2001년 9월께 71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 41억원만 일반투자자들로부터 끌어모으고 30억원은 I사모펀드로부터 빌려 주금으로 가장 납입했다. 이씨 등은 10여일 뒤 가장 납입 대금을 갚기 위해 일반투자자들이 낸 대금 41억원 중 30억원을 1억원의 이자와 함께 사모펀드에 전달했다. 또 이를 은폐하기 위해 디에이블이 36억원을 비상장 계열사에 출자한 것처럼 분식회계한 뒤 허위공시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검찰 관계자는 "가장 납입으로 이씨 등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30억원어치 디에이블 주식을 갖게 됐다"며 "결국 디에이블의 전망을 믿고 유상증자에 참여한 투자자들이 이씨의 가장 납입 대금을 대신 내준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씨는 지난 7월 유상증자 때에도 구속된 명동 사채업자 반재봉의 자금을 이용해 30억원을 가장 납입한 혐의도 받고 있다. ◆ 부도덕한 기업사냥 행각 =이씨의 가장 납입과 불성실한 경영활동으로 2002년 중반부터 디에이블은 사실상 휴업 상태에 빠졌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이씨는 지난 8월 적자가 계속 쌓이던 디에이블의 자금 44억1천만원을 빼내 자신이 대표로 있던 쿠스코아이티에 무담보로 빌려주도록 한 뒤 쿠스코아이티가 이 돈으로 다시 코스닥 등록기업인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드림원을 인수토록 했다. 검찰은 "자신이 인수한 디에이블의 자금을 빼돌려 상장 폐지까지 몰고간 뒤 그 돈으로 새 회사인 드림원을 M&A한 것은 파렴치한 기업사냥 행각"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이씨는 회사의 매출이 거의 발생하지 않을 정도로 경영상황이 악화됐다는 사실을 공시 등을 통해 주주에게 알리지 않아 이 회사에 투자한 '개미'들에게 막대한 손실을 끼쳤다고 검찰은 밝혔다. ◆ 검찰 수사 방향 =검찰은 상장.등록기업의 주식 가장 납입 행위는 선량한 투자자와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하기 때문에 강력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이를 위해 가장 납입 혐의가 있는 7천8백개 기업중 규모가 큰 20개 기업을 집중 조사하는 한편 기업 사냥꾼들의 자금줄이 되고 있는 사채업자와 사모펀드에 대한 집중 조사에 들어갔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