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 여중생 미군 궤도차량 사망사건의 유력 피고인인 관제병 페르난도 니노 병장에 대한 무죄 평결을 계기로 현행 한미행정협정(SOFA) 개정 여론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미군 당국의 군사법정 공개라는 이례적 조치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이번 공판이 '가해자가 없는 사건'이라는 기이한 결론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법조인들과 미군 관련 단체들은 여중생 사망사고에 대한 미군의 사법적 판단은 관제병 니노 병장의 무죄 평결로 사실상 결론난 것으로 보고 있다. 상대적으로 책임 소재가 커 그나마 유죄 평결을 기대했던 니노 병장에게 무죄판단이 내려진 마당에 귀책 사유가 적은 운전병 마크 워커 병장에 대한 유죄 평결은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인 여중생 2명은 미군 궤도차량에 치여 숨졌는데 이를 책임질 사람은없다"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이상한 판례를 남기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니노 병장에 대한 공판 진행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여러가지 문제점이발견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우선 재판부와 검찰의 무의지를 꼽고 있다. 피의자들의 유죄 여부를 밝혀내는데 노력하기보다는 모양 갖추기에 급급했다는것이다. 이번 사건 공판에서 검찰과 변호인단이 벌인 핵심 쟁점 사항중 하나는 통신장비이상 유무였다. 재판부가 내세운대로 통신장비 이상이 주요 무죄 이유라면 통신장비의 허술한관리가 결국 여중생 2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라는 것인데도 재판부와 검찰은 이를 밝혀 내기 위해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다. 증인 심문 과정에서 "사건 2시간 30분 전 통신장비 점검에서 고장난 부분을 정비해 이상이 없었다"는 진술이 나왔지만 대충 넘어갔고, 책임 유무 논란이 제기된부대 중대장에 대한 배심원의 증인 요청도 재판부에 의해 거부당했다. "통신장비 이상없다"는 진술은 주요 무죄 이유를 뒤엎을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것이었고 중대장 증인 요청은 제3의 피의자를 확대할 수 있는 역시 몹시 중요한 것들이었다. 여중생 범대위측은 "이미 결론낸 모양 갖추기 재판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돌출변수"라며 "이처럼 중요한 진술이 재판 과정에서 묵살당한 것은 이번 재판이 미군범죄자에 면죄부를 주기 위한 하나마나한 재판이란 점을 증명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 관계자는 또 "잦은 통신장비 고장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여중생 사망이라는 비극을 불러온 지휘책임을 물어 피의자인 병장 2명 이외에 군부대 관계자들을 별도로 추가 기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군이 사고 미군을 평결하는 비상식적 재판인 점도 지적됐다. 이번 재판에 참가한 배심원단 7명이 모두 미군이고 재판부와 검찰 또한 같은 미군이었다. 국내 법조인들은 "미국 배심제도의 핵심 전제는 배심원들과 피고인의 관계를 매우 중시하도록 되어 있으나 이번 사건의 경우 배심원들이 모두 군인으로 동료 피의자들을 심정적으로 편들 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이 핵심 전제를 정면으로 거스르고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와 함께 배심원이 무죄 평결한 사건에 대해 미군 검찰이 항고하지 못하는 미국 법 절차도 우리의 법 체계와 국민의 법 감정을 납득시키지 못하는 문제로 지적되기도 했다. 시민단체들은 결국 이번 사건을 명명백백하게 밝혀내기 위해서는 SOFA를 개정,재판권을 우리에게 넘기는 것 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중생 범대위 등 700여명은 21일 동두천 캠프 케이시 앞에서 '재판 무효'와 '재판권 이양'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동두천=연합뉴스) 김정섭기자 kimsup@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