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M에서 최고기술경영자(CTO)의 역할은 단지 연구를 총괄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새로운 사업부문의 인수합병(M&A)에서부터 환경관련 문제에 이르기까지 기술과 관련된 의사결정에는 항상 CTO가 참여합니다.기업의 진로를 정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대목은 기술이라는 점을 깨달은 결과죠." 삼성종합기술원과 3M간 기술 교류행사(3M·삼성 테크페어)와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산하 CTO클럽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최근 한국을 찾은 세계적 소재 및 생활용품업체인 미국 3M의 CTO인 폴 길러 수석 부사장(64)은 "경쟁에서 이기려면 CTO의 역할과 기능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길러 부사장은 "3M에서는 새로운 사업부를 인수할 때 '향후 기술전개 방향에 꼭 필요한지'를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삼는다"며 "따라서 CTO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환경문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수억달러 규모의 사업을 중단키로 결정했을 때도 CTO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덧붙였다. 3M은 스카치테이프와 포스트잇 등 생활용품에서부터 통신케이블,의료용 테이프,청진기에 이르기까지 5만여가지의 제품(부품 포함)을 생산하고 있다. 그 배경으로는 무엇보다도 기술개발과 혁신을 꼽을 수 있다. 3M에는 중앙연구소 외에도 40개 사업본부별로 연구소를 갖고 있다. 길러 부사장은 중앙연구소 소장인 동시에 이들 연구소의 기술개발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대부분 미국 기업들은 CTO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그러나 그 내용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는 "일부기업에서는 아직도 CTO가 연구과제를 책임지는 연구소장 역할에 머물고 있다"며 "회사가 경쟁력을 갖추려면 CTO는 명실상부한 기술부문 최고경영자가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길러 부사장은 "3M은 40년전부터 지금과 같은 형태의 CTO 제도를 확립했다"면서 "3M이 대표적인 기술혁신업체로 꼽히게 된 데는 이같은 제도가 한 몫을 했다"고 털어놓은뒤 "3M은 대학에 연구비를 지급하는 등 학술지원 활동에도 힘을 쏟고 있다"고 덧붙였다. MIT 캘리포니아공과대학(칼텍) 미네소타대학 미시간대학 등 20여개 대학에 매년 연구비를 지급하고 있다는 것. 그는 또 고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인 STEP(Science & Technology Education Program)을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70년대말부터 본사가 있는 미네소타주 세인트폴과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매년 50∼6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과학을 가르치고 회사 연구소도 빌려준다는 것이다. 한국의 이공계 기피 현상에 대해 그는 "미국에서도 10년전에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며 "학생들이 사회에서 활동할 10∼20년 뒤를 내다보고 전공을 결정했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에서도 얼마 전까지는 변호사나 MBA가 선호됐지만 지금은 달라졌다"면서 "한국에서도 5∼10년 뒤에는 '의사보다 기술관련 직업을 택하겠다'는 학생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길러 부사장은 미국 오거스타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네소타대에서 화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3M에는 지난 65년 입사해 37년째 몸담고 있으며 2000년부터 R&D담당 수석 부사장을 맡고 있다. 글=조정애 기자 jc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