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일궈온 과수농사를 망쳤는데 100만원남짓한 묘목 값으로 뭘 어쩌란 말입니까." 정부의 특별재해지역 지원이 주택과 가내공장, 점포 위주로 이뤄져 과수 피해농민들의 심한 반발을 사고 있다. 23일 충북 영동.옥천군과 이 지역 과수재배농민들에 따르면 태풍과 집중호우로약 20%에 달하는 포도와 사과, 배, 복숭아 등이 매몰.유실 또는 침수.낙과 피해 등을 냈으나 복구비 지원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가 마련한 특별재해지역의 과수피해 복구비는 인삼과 화훼류에 한해 ㏊당 13만9천원의 농약 값을 지원하고 나머지 벼, 채소, 과수 등은 일반 농작물로 분류돼4만9천940원을 지원토록 하고 있다. 또 매몰.유실되거나 부러져 못쓰게 된 나무를 다시 식재할 경우 ㏊당 사과 170만원, 배 160만원, 포도와 복숭아 120만원의 묘목 값을 지원한다. 시설 복구비도 턱없이 낮아 연동 비닐하우스(대형)는 ㎡당 2만5천원, 단동(소형)은 7천660원을 융자 55%, 보조 45% 조건으로 지원하는 게 고작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과수 피해 농민들이 태풍과 집중호우로 망가진 시설을 복구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으며 일부 농민들은 대책기구 결성에 나서는 등 집단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천평의 포도를 재배하는 김동완(57.영동군 매곡면)씨는 "유일한 생계수단인 포도농사를 완전히 망쳤는데 50만원도 안되는 농약과 묘목 값으로 복구하라는 건 말도안 된다"며 "이는 1년 농사에 대한 손해는 고사하고 유목을 심고 3-5년 후 수확하는과수의 특성을 전혀 고려치 않은 졸속행정의 표본"이라고 맹비난했다. 또 3천여평의 사과를 재배하는 변찬수(44.영동군 심천면)씨는 "600여 그루의 사과가 매몰.유실돼 2억여원의 손해를 봤는데 정부의 지원은 전혀 없다고 해도 틀린말이 아니다"며 "특별재해지역으로 선포됐다는데 정작 농민들에게 돌아오는 혜택이뭐가 있느냐"고 반발했다. 영동군 심천면 사과작목반인 청우회 공영길(48) 회장은 "정부가 '전국 일원'을특별재해지역으로 선포하면서 지역별 농작물 피해상황이나 특성 등을 제대로 고려치않고 획일적 지원기준을 적용했다"며 "주변 작목반 등과 연대해 정부에 과수피해 보상 현실화를 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영동군 관계자는 "자연재해대책법 등에 기초해 특별재해지역 지원기준이 마련돼 상대적으로 태풍과 집중호우로 피해가 컸던 과수농가가 불이익을 보고 있다"며 "농약비 지원도 인삼과 화훼만 상향된 기준을 적용받을 뿐 과수 등 일반 농작물은 종전의 지원 단가를 적용받는다"고 말했다. 한편 제15호 태풍 '루사'와 집중호우로 영동지역은 포도 307㏊, 사과 127㏊, 배182㏊, 복숭아 101㏊ 등 전체 과수면적(3천318㏊)의 21.6%인 717㏊가 매몰.유실.침수됐고 인근 옥천지역은 포도 64㏊, 사과 7㏊, 배 31㏊, 복숭아 22㏊ 등 전체(1천293㏊)의 9.6%인 124㏊가 피해를 봤다. (영동.옥천=연합뉴스) 박병기기자 bgi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