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수확의 기쁨으로 설레야 할 민족최대의 명절 추석. 그러나 올해는 추석이 주말과 겹쳐 연휴기간이 사흘밖에 되지 않는데다 전국이 재해지역으로 선포될 만큼 엄청난 태풍 피해를 입은 직후이기 때문에 여느 해와는 사뭇 다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짧은 연휴로 인해 귀향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그나마 사회복지시설은 태풍 피해에 대한 국민적 관심 때문에 오히려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등 태풍 피해의 '후폭풍'을 겪고 있는 것이다. ▲'태풍 피해' 한가위 시름 = 태풍 피해는 피해지역 주민만이 아니라 그나마 명절 때만이라도 반짝 단체나 기관들의 지원을 기대할 수 있었던 사회복지시설의 노인들이나 고아들까지도 한숨 짓게 만들고 있다. 종묘공원에서 매일 노인들에게 무료 점심을 제공하는 노인복지시설 '사랑채'의 경우 매년 이맘 때면 인근의 모 생명사와 은행에서 연락이 와 추석 떡값이라도 보태라며 얼마간의 금액을 지원해 줘 함께 생활하는 노인 25명에게 양말이라도 한 켤레씩 선물했었지만 올해는 이들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 김금복(52) 사랑채 회장은 "기다리다 못해 엊그제 먼저 전화를 했더니 '수해복구지원으로 돈이 많이 나갔다. 내년에 보자'고 해 말도 못 꺼내고 전화를 끊었다"며"태풍 피해가 양로원에까지 영향을 미칠 줄은 몰랐다"고 착잡해 했다. 추석 차례상을 차려야 하는 주부들도 태풍 피해의 간접 피해자다. 수해와 태풍피해가 이어지면서 과일과 채소의 공급물량이 줄어 가격이 지난해 보다 1.5~2배 이상 올랐기 때문이다. 주부 최윤정(31.서울 송파구 천호동)씨는 "가락시장에서 15㎏ 배 한상자를 사려고 했는데 지난달보다 30%는 더 오른 4만2천원이나 해 결국 한상자를 다 사지 못하고 절반만 샀다"며 "차례상을 차려야하긴 하는데 예산은 그대로라서 음식 수를 줄이든지 해야겠다"고 말했다. 태풍 피해로 고향의 큰집이나 부모님댁이 침수되거나 반파.완파돼 차례를 지낼 장소가 마땅치 않은 것도 사람들도 적지않다. 강릉에 있는 친가가 이번 태풍으로 완전 침수돼 아직 복구되지 않았다는 최병모(39.자영업)씨는 "고향 부모님과 협의해 앞마당에서 약식으로 차례상을 차리기로 하고 피해 복구에 시간을 쏟기로 했다"고 말했다. ▲역귀성.귀향포기 늘어 = 연휴 기간이 짧아지고 최악의 교통대란이 예상됨에 따라 귀향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속출하는가 하면, 반대로 '역귀성'을 통해 교통난을 피하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회사원 박모(59)씨는 "고향인 부산까지 내려갔다 오려면 거의 연휴기간을 차안에서 보내야 할 것 같아 부모님께는 다음에 찾아뵙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이번에는 집에서 쉴 계획"이라고 말했다. 역귀성 차량도 늘어 도로공사는 연휴 전날과 첫날 작년 추석연휴 같은 기간에 비해 약 8% 늘어난 39만8천여대의 차량이 서울로 들어올 것으로 예상했다. 서울에 사는 주부 김모(58)씨는 "연휴기간이 짧아 시댁인 울산까지 갔다오려니 막막했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친척들이 올라와 제사를 지내기로 해 한시름 덜었다"고 말했다. ▲관광객은 줄어 = 관광.여행경기도 예년 이맘때와 달리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난 태풍 '루사'로 큰 피해를 입었던 강원도 일대 관광지는 당시의 타격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제 강원도내 주요 호텔과 콘도 등 숙박업소의 경우 추석연휴기간 예약률이 지난 추석때의 20∼30% 선으로 떨어진데다, 예약을 전혀 받지 못한 곳들도 있다. 태백 인근 한 호텔 관계자는 "지난 태풍으로 강릉쪽에서 들어오는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데다 이미지까지 나빠져 추석 연휴기간 예약을 단 한 건도 못받았다"며 "성수기인 추석 장사를 완전히 공치게 생겼다"고 말했다. 제주도 등 다른 태풍 피해지들도 강원도만은 덜하지만 타격이 적지 않아 제주도일대 호텔 등 숙박업소들도 작년에 비해 30∼40% 가량 손님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남권.박진형 기자 jh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