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사진상규명위가 이번에 중앙정보부의 조작극이라고 밝힌 74년 '인민혁명당(이하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군사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피고 8명이 유례없이 대법원 상고가 기각된 지 20여시간만에 형이 집행되면서 국내외적으로 대표적 인권침해 사건으로 비난받았던 사건이다. 당시 중정은 "도예종씨 등 23명이 인혁당 재건위를 결성, 북한의 지령을 받아 당시 민청학련을 배후 조종하여 정부를 전복하고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하려 했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23명 중 8명이 군사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고 나머지 15명도 무기징역에서 징역 15년까지 중형을 선고받았다. 사형선고를 받은 8명은 대법원 상고가 기각된 지 하루도 채 안돼 75년 4월 9일 형이 집행됐다. 비상식적인 사형집행에 대해 스위스에 본부를 둔 국제법학자협회는 이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으며 유가족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등은 유신체제에 대한 전국민적 저항으로 위기의식을 느낀 정권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날조한 조작극이라고 주장하며 진실규명을 촉구했다. 국제 앰네스티도 한국관계보고서를 통해 ▲변호인측 증인이 한 사람도 채택되지 않은 점 ▲피고인의 가족 중 한 명만 방청을 허용받는 등 재판이 통제된 점 ▲관계당국이 공식적 재판기록 공개를 완강하게 거부한 점 등을 들어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국내외의 이같은 의혹제기는 암울한 시대상황 아래에서 힘을 얻을 수 없었고,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진실은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묻혀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가운데 지난 98년 `인혁당 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을 위한 대책위원회'가 구성되면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다시 세인들의 관심을 끌게 됐고 이후 진상규명위가 지난해 3월 인혁당 사건과 관련, 감옥에서 사망한 장석구씨 사건을 직권조사하기로 결정하면서 진실 규명의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특히 국방부가 그동안 관련자료가 없다며 `발뺌'해왔던 군사법원 공판기록을 위원회가 올해 초 입수하면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진실은 점차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이후 당시 수사를 맡았던 중정 관계자와 파견 경찰관 등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면서 증거조작, 고문 등 중정의 개입증거도 구체적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과정을 거쳐 진상규명위는 그동안 유가족과 관련단체 차원에서만 제기되던 각종 의혹들을 국가기관으로서는 처음으로 확인하는 개가를 올렸다. 진상규명위가 이 사건이 중정의 조작극임을 입증함에 따라 유가족들의 재심청구여부가 자연스레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진상규명위 관계자가 밝혔듯이 형사소송법상 재심사유에 해당하는 '기존 재판결과를 뒤집을 만한 새로운 증거'가 국가기관에 의해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인혁당 대책위측은 "고문, 증거조작, 공판조서 변조 등이 진상규명위에 의해 확인된 만큼, 이를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재심청구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혀 재심청구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현재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와 국가인권위에 접수된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들의 명예회복 신청과 사건조사 진정의 처리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연합뉴스) 김남권 기자 sout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