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루사'가 휩쓸고 지나간 전남 여수시 앞바다는 잔잔함을 되찾았다. 그러나 이들 바다에는 파괴된 양식장의 시설물들과 양식장에서 사용했던 스치로폴로 어지럽게 덮여 있어 폐허를 연상케 하고 있다. 여수항에서 뱃길로 40여분 걸리는 여수시 화정면 개도리 월항마을 앞 바다에 설치된 270조의 가두리 양식장은 대부분 망가지고 찢겨진채 일부 어민들이 어장 주변에서 남아 있는 몇마리의 고기라도 건지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특히 50조의 양식장을 갖고 있었다는 어촌계장 김수보(56)씨는 "양식장이 모두 파괴돼 우럭, 돔, 농어 등 2-3년생 어류 30만마리가 모두 빠져 나가 버렸다"고 한숨지었다. 김씨는 "피해액이 어류 15억원, 양식장 시설 1억원 등 16억에 달한다"며 "전체 마을 270조 가운데 50% 이상 피해를 입어 피해액이 수십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마을을 포함한 가막만 섬지역 대부분은 해면에서 10여m 높이에 있는 소나무와 밭 작물까지 바닷물로 잎이 노랗게 변했거나 염분으로 말라 비틀어져 당시 태풍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어민들은 이같은 피해는 지난달 31일 낮 12시부터 2시 사이에 발생했다고 말했다. 당시 5-6m 가량의 파고와 초속 40여m의 강풍으로 대부분의 어장이 피해를 보았으나 서 있기도 힘들 정도여서 마을 앞에 설치된 양식장이 파괴되는 것을 보고도 아무런 손을 쓸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 마을에서 뱃길로 4㎞ 정도 떨어진 화산마을의 피해는 더욱 컸다. 10-20조로 묶어 놓은 양식장이 송두리째 파괴돼 흔적조차 없는가 하면 1㎞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던 일부 양식시설이 파도에 밀려 4m 높이의 마을 선착장으로 올라앉아 있다. 이 마을은 2곳에 산사태가 나고 140m의 도로가 유실됐으며 섬 주변은 파괴된 양식장 시설 등 쓰레기로 둘러싸였고 도망가지 못하고 양식시설에 남아 있던 수백마리의 죽은 고기들의 썩는 냄새로 가득 차 있다. 더욱이 선착장 부두시설이 파괴돼 여객선이 접안하지 못해 인근 6개마을 450여어가들이 나들이 하는데 큰 불편을 겪고 있다. 가로.세로 각 6m 크기의 양식장 18조를 가지고 있었다는 이 마을 어민후계자 문명선(44)씨는 "양식장이 있던 곳은 하얀 스피로폴만 떠 다닐 뿐 흔적조차 없어졌다"며 "키우던 25만마리의 고기를 한마리도 건지지 못해 13여억의 피해를 입었다"며한숨지었다. 그는 "고향인 이 곳에서 계속 살아 오면서 15년째 양식장을 운영해 왔으나 이같은 피해는 처음"이라며 "8억원의 부채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답답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이 마을 주민들은 "800조 가까운 양식장 가운데 90% 이상이 피해를 입어 수백억원의 피해가 났을 것"이라며 "부채 상환 연기와 재해대책비 우선 지원, 실제 피해액보상 등의 신속한 조치를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여수시 관계자는 "화정면과 남면일대 양식장이 극심한 타격을 입어 수백억원의 피해가 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아직 서면으로 피해 접수가 되지 않아 정확한 피해액은 알 수 없다"고 말해 좀 더 신속한 피해 조사가 요망됐다. (여수=연합뉴스) 최은형 기자 ohcho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