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타계한 이주일씨는 지난 30여년간 대중을 웃기고 울렸던 한국의 대표적인 코미디언이었다. 자그마한 키에 거무튀튀하고 주름 많은 얼굴,벗겨진 머리에 더부룩한 수염자국,야트막한 코가 이씨의 상징이었다. "무명 시절에는 얼굴이 쥐어뜯고 싶도록 미웠다"고 술회했던 이씨는 그런 외모를 오히려 전매특허로 만들면서 대중들에게 이름 석자를 각인시켰다. 이씨는 1965년 샛별악극단 사회자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그러나 못생긴 외모 때문에 20여년 가까이 지방 쇼단 MC와 서울 변두리 극장 무대를 전전하는 무명 시절을 거쳤다. 그는 지난 79년 MBC '웃으면 복이와요'를 통해 비로소 TV에 데뷔했다. 그러나 못생긴 외모 때문에 시청자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기회는 곧 다시 왔다. 80년 1월19일 방송된 TBC '토요일이다, 전원출발'에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우연히 이름을 알렸다. 프로그램 녹화 도중 큐사인을 잘못 알아듣고 실수로 연못에 빠진 모습이 너무 우스워 제작진의 주목을 받았던 것. 이 사건을 계기로 이씨는 2주일 만에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이 때부터 그는 '이주일'이 됐다. 80년대에는 TV와 밤무대를 누비며 전성시대를 누렸다. 이씨는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콩나물 팍팍 무쳤냐" "뭔가 보여 드리겠습니다" "인기를 사절합니다" 등의 재치있는 말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수지큐' 노래에 맞춰 엉덩이를 흔들며 뒤뚱뒤뚱 걷는 '오리춤'은 후배 코미디언들이 두고두고 따라할 정도로 유명하다. 그는 92년 평소 친분이 있던 고 정주영 회장의 권유로 14대 총선에 출마해 경기 구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인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씨는 "4년 동안 코미디 잘 배우고 갑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정치판을 떠나 코미디언으로 복귀,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평소 건강했던 이씨는 지난해 10월 말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평생 남을 웃기며 살아온 그가 병상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다. 고인은 그러나 힘겹게 투병하면서도 '금연 홍보대사'로 나서 '이주일 신드롬'이라고까지 불린 금연 열풍을 몰고 왔다. 연예계가 각종 비리혐의로 얼룩진 현실에서 고인의 이같은 헌신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공인의 도리를 다한 귀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