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정말 혈육들을 만날 수 있는 겁니까" 북쪽에 있는 가족들이 5차 이산가족 상봉후보 명단에 포함됐다는 소식을 들은 남측 이산가족들은 24일 "드디어 우리 차례도 왔다" "죽기 전에 한번은 보게 됐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이들 가족은 대부분 지난번 이산가족 상봉당시 막판에 명단에서 빠졌던 아픔들이 있어, 만남의 순간까지 부디 남북관계에 구름이 끼는 일이 없기만을 바랬다. 0...북에 있는 둘째 형 한상호(71)씨를 만날 수 있게 된 동생 한상규(64.서울서초구 방배2동)씨는 "지난 3,4차 상봉때도 만나는 줄 알고 기대가 컸는데 결국 물거품이 돼버려 이번만은 반드시 만나 생전 마지막 소원을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얼굴은 가물거리지만 한어머니 젖을 먹고 자란 피붙이의 손이라도 잡아보고 싶다"고 기원했다. 한씨 가족들은 1950년 6.25가 발발하자 정리할 게 남아있다던 할머니를 남겨둔 채 6남매를 데리고 고향인 천안으로 피난을 떠났다. 천안에 도착한 그해 7월초 현재 이민을 간 큰 형님과 서울공대 2학년이었던 둘째 형이 할머니를 모시러 다시 상경했고, 그 길로 둘째형과는 생이별을 하게 됐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한씨는 "북한에 의용으로 끌려갔는지 반공포로가 됐는지 전혀 알길이 없었고 생사확인조차 안됐다"며 가물거리는 형의 얼굴을 그리려 지긋이 눈을 감았다. 0..."불과 몇년전까지 제사를 지냈다는 게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지난 2000년 남북이산가족 상봉 당시 북한에서 형 차만준(71)씨가 자신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적십자사로부터 전해들은 이후 차봉준(67.서울 양천구 신정동)씨는 그동안 꿈과 현실사이를 오가야만 했다. 1.4 후퇴때 형과 헤어진 뒤로 제사를 지내왔다는 차씨는 기억도 안나는 피붙이가 하늘아래에 있다는 소식이 믿기지 않아 밤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매번 상봉대상자에서 빠져 아픔을 곱씹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번만은 반드시 "꿈은 이루어질 것"이라며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또한번 눈시울을 붉혔다. 4형제 중 셋째였던 만준씨는 14살의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 가족들과 떨어졌고,1.4후퇴때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이후 `총살당했다' `북한에 있다더라'는 등의 소문만 무성했을 뿐이었다. 형을 애타게 기다리던 가족들은 결국 살아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접어두고 반세기동안 한을 품은 채 제사를 지내왔다. 당뇨와 고혈압으로 건강이 많이 악화됐다는 차씨는 "죽기 전에 형을 한번만이라도 보고싶다"며 상봉에의 강한 의지를 보였다. 0...북의 여동생 박정원(68.여)씨를 만날 수 있게 된 박정월(71.여.서울 상북구수유동)씨는 지난 4차상봉때 막판 명단에서 빠진 상처가 아물지 않았지만 "손재주 좋고 또랑또랑하던 동생을 이번에는 꼭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고대했다. 일찍이 해방전 폐결핵으로 아버지를 잃은 5남매는 초등학교 교사였던 어머니와서울에서 근근히 생활하다 전쟁이 터진 그해 9월 피난통에 여동생과 헤어졌다. 박씨는 "헤어질 당시 정원이는 배화여고에 재학중이었는데 워낙 예쁘고 또랑또랑해 병약한 나에게 큰 위안이었다"며 하루빨리 상봉일인 추석명절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0...전쟁이 끝날무렵 의용군에 징용됐던 형 김세진(68)씨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은 김형진(58.서울 도봉구)씨는 경북 안동에서 보냈던 어린시절 "형과 멱감고 고기를 잡으며 놀던 기억이 난다"며 만남을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남측의 부모님은 형을 그리워하다 10여년 전에 돌아가셨다. 김씨를 비롯한 남쪽의 5남매는 부모님 제사때 등 모이기만 하면 큰 형 세진씨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웠다고 한다. 김씨는 "부모님 묘소에 가서 사진을 찍고, 형제들 모두 가족사진을 찍어 형에게 조카들 모습 등을 보여 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0...반세기만에 동생 윤희상(69)씨를 만나게 될 윤숙자(79.여.서울 강서구 가양동)씨는 "이번에는 꼭 만날 수 있도록 제발 도와달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소감을 밝혔다. 윤할머니 남매가 헤어지게 된 것은 지난 55년. 당시 인천에 살던 희상씨는 아침을 먹고 집을 나간 후 그 동안 생사조차 알 수 없어 가족들은 희상씨가 죽은 줄로만 생각해 왔다. 윤할머니가 지난해 4차 이산가족 상봉후보명단에 북의 동생이름이 포함돼 있다는 깜짝놀랄 소식을 듣고 한가닥 상봉의 희망을 가졌고, 그후 북측에서 보내온 동생의 사진을 보며 재회의 날만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윤할머니는 지금 심한 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한 상태라 이번이 동생을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생각하고 '혹시나 또 무산되면 어떻게 하나' 마음을 졸이고 있다. 혼자서 쓸쓸히 여생을 보내고 있는 윤 할머니는 "이번에 또 만일 일이 잘못돼 동생을 만나지 못하고 이대로 살다가 죽는다면 제대로 눈을 감을 수 없을 것 같다"며 "동생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터질 것 같다"며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상헌 황희경 이 율기자 yuls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