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정책 방향은 장관 한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다. 노동행정의 성격상 법을 집행하는 일보다 지침을 통해 현장을 지도하는 업무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관의 의지에 따라 정책이 춤을 추기 일쑤이고 어떤 장관은 정책을 잘못 추진해 산업현장을 벌집 쑤시듯 뒤집어 놓기도 한다. 노동부로 볼 때 격동의 세월이랄 수 있는 1990년대 이후 가장 뇌리에 남는 장관은 문민정부 초기인 93년 2월 부임한 이인제 장관일 것이다. 당시 개혁노동정책을 펼치면서 노동계로부터 대환영을 받았던 그는 경영계와 노동부 내부로부터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로 인식됐다. 무노동부분임금제 도입, 노조의 경영권 참여 등 그동안 금기시돼 온 정책을 잇따라 내놓으며 노사분규에 기름을 끼얹었기 때문이다. 전국지방노동관서 직원들은 혼선을 빚는 현장을 수습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경제기획원(지금의 재정경제부) 출신인 진념, 이기호 장관은 개인적인 성품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행정능력만큼은 모두 뛰어나다는 평이다. 진 장관은 지난 96년 노동법 개정이란 '대역사'를 이뤄낸 인물. 물론 청와대 주도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노사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쟁점사안들에 대해 대부분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점수를 얻고 있다. 이 장관은 조용한 성격과 달리 정책을 밀어붙이는 뚝심이 남달랐다. 외환위기 이후 대량실업 사태 속에서 거의 매일 실업대책을 쏟아내며 '윗사람'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아냈다. 노사정위원장을 하다 지난 2000년 8월 부임한 김호진 장관은 개인홍보에 신경을 많이 쓴 정치적 장관으로 직원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그는 1년 남짓 장관을 하면서 신문과 방송 동정기사를 많이 챙겨 지금까지도 '홍보장관'으로 통한다. 노사분규가 한창인 94년에 노동사령탑을 맡은 남재희 장관의 행보는 좀 특이했다. 노동관계법을 위반, 사법당국으로부터 수배를 받은 재야노동 세력들과 수시로 물밑접촉을 벌이며 노동개혁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산업현장을 혼란에 빠뜨릴 가능성이 있는 노동정책 수립에는 신중을 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