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 근무제 도입을 위한 노사정위원회 협상이22일 최종 결렬됨에 따라 노사정 합의를 바탕으로 한 주5일 근무제 도입은 완전히물건너갔다. 이에따라 주5일 근무제는 정부가 단독 입법을 추진하는 가운데 당분간 개별기업또는 산별노조 차원에서 사용자측과 협상을 통해 법정근로시간(주당 44시간)은 그대로 둔채 연월차 휴가를 줄이는 등의 `편법'으로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주5일 근무제 도입 협상이 지난 2년여 동안 온 국민의 관심을 받아왔던 점에 비추어 노.사.정 모두 국민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살리지못하고 협상력 부재라는 국내 노사관계의 현 주소를 그대로 드러냈다는 비난을 피할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협상 경과와 결렬 배경 = 노사정위는 지난 2000년 5월24일 근로시간단축특별위원회를 발족, 그해 10월23일 `가능한 한 빠른 시일안에 업종과 규모를 감안해 연간 일하는 시간을 2천시간 이내로 감축한다'는 내용의 `근로시간단축 관련 기본합의문'에 합의했다. 이후 연월차 휴가 일수 조정 등 핵심 쟁점에 대한 지루한 줄다리기 끝에 지난해12월 12일 `합의대안'을 이끌어냈지만 노동계는 위원장 선거, 발전파업 등을 이유로일방적으로 협상 중단을 선언했다. 노동계가 장기근속자 임금보전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해 생리휴가 무급화, 월차휴가 폐지 등 `국제적인 기준'을 요구하는 경영계에 많은 부분을 양보하는 꼴이 됐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공무원에 대해 매달 한차례 주5일 근무제를 시범 실시하고, 금융노조 등이 단체협상에서 주5일 근무제 도입을 관철시키기로 하면서 노사정위 논의는지난 3월부터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노사정위는 여러차례 실무협상 등을 거쳐 지난 5월초 일괄타결을 시도했지만 무산됐으며, 이어 5,6월 물밑 접촉을 통해 이견을 상당히 좁혔지만 22일 임금보전방법등에 대한 이견으로 끝내 합의에 실패했다. 이번 협상 결렬은 무엇보다 노동계, 경영계 양 조직의 이해관계 대립과 신뢰 부족으로 임금보전 방안, 연차휴가 가산년수, 초과근로수당 할증률 등 세부쟁점에 대한 절충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주5일 근무제 도입에 따른 임금보전 문제에 집착, 법 부칙과 합의문에임금보전 방안을 명확히 규정할 것을 요구한 반면 경영계는 선언적으로 임금보전 규정만 포함시킬 것을 주장, 소모적인 논쟁만 되풀이했다. 이러한 주장의 이면에는 주5일 근무를 하더라도 기존에 받던 임금을 모두 받아야 겠다는 노동계의 욕심과 연월차.생리 수당 등을 삭감해야겠다는 경영계의 속셈이깔려 있다. 협상이 결렬된 또 다른 이유는 노동계와 경영계를 대표해 협상을 주도한 한국노총과 경총이 조직 내부는 물론 관련 단체의 반발에 부딪혀 책임있는 자세로 협상에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들은 끊임없이 영세사업장에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되면 임금부담이 커지고 인력난이 심화된다는 이유로 반발했고, 전경련도 주5일 근무제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논리로 재계측 협상 대표인 경총을 압박했다. 노동계의 경우 노사정 협상에 불참하고 있는 민주노총은 물론 한국노총 산하 제조업 관련 산별 연맹들조차 원론 수준의 안을 요구하는 바람에 이남순노총위원장이조직 내부의 반발을 지나치게 의식해 유유부단한 자세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한편에서는 노사정위가 당초 지난 2000년 10월 주5일 근무제 도입 원칙에 합의한뒤 지나치게 세세한 부분까지 노사 합의를 이루려고 시도한 것 자체가 무리였다는비난도 만만치 않다. 노사의 이해관계가 맞서는 사안에 대해 노사정위가 쟁점 하나 하나까지 `합의'라는 목표를 세우는 바람에 협상을 2년 넘게 끌어오면서 결국 합의를 바탕으로한 입법도 물건너가고 정부 입법을 추진할 시기도 여러차례 놓쳤다는 지적이다. ◇전망 = 노사정위원회가 이날 본회의에서 협상을 종료하고 협상 결과를 정부측에 넘김에 따라 일단 노동부는 정부 단독으로 입법을 추진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노동부는 지난해 노사 중립적인 입장에 있는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안을 바탕으로 시행시기 등을 일부 조정해 법안을 만들어 조만간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공익위원안은 ▲주휴일 무급화에 따른 임금보전을 법 부칙에 명시하고 ▲1년이상 근속자에게 18일의 연차휴가를 주고 3년에 하루씩 추가해 최고 22일을 부여하고▲사용자의 적극적인 권유에도 불구하고 사용하지 않은 휴가에 대해서는 금전보상의무를 없애고 ▲주휴 및 생리휴가를 무급으로 바꾸고 ▲초과근로상한 및 할증률을 현행으로 유지하는 등의 내용으로 돼 있다. 그러나 공익안이 최근 노사정위에서 논의된 안 보다 전반적으로 노동계에 불리하게 돼 있어 입법과정에서 노동계의 심한 반발이 예상되며, 내용을 유리하게 끌어가기 위한 경영계의 대국회 로비 등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 입장에서는 주5일 근무제 도입이 국민의 정부가 추진해온 노동개혁 핵심과제인데다 대국민 약속이라는 점에서 입법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이지만 대통령선거 등과 맞물려 정부 입법이 예정대로 이루어질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국회에서 법개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다행이지만 정치권의 대립으로 입법이 마냥 지연될 경우 개별기업 또는 산별연맹 차원에서 주5일 근무 도입 요구가 거셀 것으로 보여 노사관계를 긴장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증권 등 제2금융권이 주5일 근무제 도입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으며 서울지하철공사 등 공공부문 노조들도 연대투쟁을 통한 주5일 도입방침을 정해 놓고 있다. 동시에 대기업이나 노조의 힘이 센 일부 사업장에서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단협개정을 통해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하는 사례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은행이 주5일 근무제에 들어간데다 그동안 노사정위 협상 결과를 지켜보며도입을 미뤄왔던 대기업들이 줄줄이 가세할 것으로 보여 주5일 근무제는 사회 전반적인 대세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일선 사업장에서 국제기준에 맞지 않는 휴일 휴가제도나 주당 법정근로시간 44시간은 그대로 둔채 연월차 휴가 조정 등을 통한 기형적인 형태의 주5일근무제가 만연돼 정부가 뒤늦게 입법을 하더라도 일선 사업장의 임단협 내용과 상충되는 등의 혼란도 우려된다. (서울=연합뉴스) 이성한 기자 ofcours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