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스페인간 월드컵 8강전이 열린 지난달 22일 서울 양천구 목동 아파트. 마지막 태극전사 홍명보가 찬 볼이 골네트를 가르는 순간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 일부 주민들은 집밖으로 뛰쳐 나와 낯선 이웃들과 얼싸안았다. 곧이어 인근 호프집 등에선 이웃간에 승리의 건배를 나누는 술잔들이 오갔다. 목동 13단지 아파트 주민 김인기씨(47)는 "8강전 응원 때 안면을 익힌 옆집 가족과 4강전과 3.4위전을 함께 시청했다"며 "월드컵이 그동안 잃어버렸던 이웃사촌을 되찾게 해줬다"고 말했다. 월드컵은 콘크리트 도시의 이웃간 '단절의 벽'을 허물어 버렸다. 전국민이 붉은 악마가 되어 승리의 감동을 나누면서 '우리 동네'라는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공동체 문화가 싹을 보인 것. '익명성과 무관심'으로 점철돼온 도시의 이웃문화가 '대∼한민국'이란 용광로에 녹아서 새로운 '커뮤니티' 문화를 잉태시키고 있는 것이다. 월드컵 응원에서 되살아난 '우리 마을' 의식은 경기의 '4강 신화' 못지않게 우리가 얻은 값진 선물이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 청구아파트에 사는 양영수씨(36)는 "이제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고 들려줬다. 이제 태극전사들과 붉은 악마들 덕분에 키운 모처럼의 '불씨'를 살려나가는 것은 기성 세대의 과제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는 "월드컵은 지구촌의 스포츠 축제인 동시에 한국인들에겐 '내 안의 우리'를 재발견하는 공동체 축제가 됐다"며 "지역별 특성에 맞는 축제를 개발해 지역 주민들이 참가하는 장으로 활용하면 모처럼만에 형성된 공동체적 유대감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는 "우리 민족은 원래 '나'보다는 '우리'를 생각하는 공동체 의식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강한 민족"이라며 "월드컵을 통해 다져진 이웃간 정을 지역 사회의 소외된 이웃에 대한 '보살핌 정신'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