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0일 오후 2시30분 서울 시청앞.한국의 월드컵 16강 진출의 분수령인 한-미전을 1시간 앞두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빗줄기가 굵어지자 '붉은악마'들은 우산을 펼쳤다가 이내 접고 비를 맞았다. 우산 때문에 뒷사람이 경기 중계 스크린을 보지 못할까 우려해서였다. 이와 유사한 장면은 지난 91년 런던 하이드파크에서 볼수 있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 등 세계 3대 테너가 역사적인 공연을 갖던 도중 비가 내렸지만 영국 왕실 가족을 비롯한 관람객들은 비를 맞은 채 공연을 봤다. W세대가 거리의 월드컵에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보인 것이다. W세대란 15∼25세의 붉은 악마가 주력을 이루는 월드컵세대를 지칭하는 말. 신세대들은 그간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묘사되기 일쑤였다. 그런데 월드컵기간중 동료를 걱정하고 국가와 민족을 우선시하는 모습이 나타나면서 이같은 통념은 깨져버렸다. 이들은 경쟁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하는 것을 지상과제로 여겨온 '개발연대세대'와는 다르다. 근사한 이념을 성취하기 위해선 수단과 과정상의 사소한 문제쯤은 눈감을수 있다는 '반독재세대'와도 구별된다. 이들은 승패에 관계 없이 월드컵의 열기를 밤새 즐기면서도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는 급한 사람을 위해 좌측에 빨리 갈수 있는 통로를 내주는 '신인류'다. 그러나 이같은 '배려의 문화'가 W세대를 중심으로 월드컵이 끝난뒤에도 계속 이어지게 하려면 사회 지도층의 변화가 무엇보다도 요구된다. 박태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영국이 시민의식 면에서 다른 나라들을 앞지를 수 있었던 것은 왕족과 귀족들이 모든 면에서 솔선수범했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에서 지도층이라고 평가받는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들도 '큰 그림'을 제시하고 먼저 사람들을 선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상택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