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막바지로 접어든 가운데 제조업체들이 일하는 분위기를 빨리 정착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기업들은 그동안 생산 차질을 감수하면서도 월드컵 열기를 '노사화합의 호기'로 보고 적극 동참해 왔으나 '즐기는 분위기'가 너무 길어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7월1일 임시공휴일에 이은 2일 국민 대축제일'이라는 정부 방침이 나오자 기업들은 "빨리 제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데…"라며 걱정하고 있다. 이들은 "곧 여름휴가로 이어지는데 두 달 이상 들뜬 분위기가 이어질 경우 생산관리에 문제가 커질 수 있다"며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월드컵 기간 중에 벌어진 파업 손실까지 합치면 생산 차질액이 줄잡아 7천여억원에 이른다. 회사 관계자는 "한국 대표팀의 4강전 때 야간조 4시간 휴무와 한-미전 오후 휴무, 7월1일 휴무 등 월드컵 축하행사만으로 1만2천여대 1천여억원 이상의 생산 차질이 났다"고 말했다. 게다가 노조 파업에 따른 4만3천여대 5천5백억원의 생산 차질을 만회하려면 월드컵 이후 생산라인을 풀가동해야 하는데 경축 분위기가 길어지고 휴가철이 임박한 상황이어서 울산공장 관리자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회사측은 임금협상이 마무리되는 7월 초부터 생산 차질분을 잔업 등으로 만회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공장 근로자들도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하지만 잘 안 된다고 하소연한다. 울산 H기업 조모 과장(36)은 "새벽 4시면 습관적으로 일어나 월드컵 녹화방송을 보게 된다"면서 "동료사원 상당수가 불면증과 환청 증상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울산 석유화학공단의 S기업 김모 의무실장은 "월드컵이 파장 분위기로 접어들면서 환청은 물론 무기력 현상 등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근로자들이 많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월드컵 후유증을 억누르지 못하고 서둘러 여름휴가를 떠나는 근로자들이 크게 늘 것으로 보고 이탈 방지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국내 최대 자동차 부품회사인 세종공업은 7월 초 노사 대화합 잔치를 열어 월드컵 열기를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해볼 생각이다. 삼성정밀화학은 7월 한 달간을 '안전 강조기간'으로 정하고 근무 교대할 때마다 1시간씩 안전교육을 받도록 했다. SK, S-OIL 등 정유업체들은 생산현장에 안전요원을 추가 배치키로 했다. 월드컵에서 얻은 에너지와 활력을 생산현장에까지 이어지도록 오히려 근로자들의 월드컵 열기를 더욱 확산시킨다는 전략을 구사하는 기업도 있다. 현대중공업 정재헌 홍보부장은 "스페인 브라질 등 축구 강호 3국의 훈련캠프 제공과 월드컵으로 더욱 돈독해진 노사 대화합은 월드컵 하루 휴무로 입게 된 30억원 손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이익이 됐다"면서 "인위적인 기강 확립 대책은 없다"고 말했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