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스페인을 이기면 우리 가족의 행복 스코어는 3 대 1이 될 겁니다. 반대면 1대3으로 저만 행복해지는 겁니다. 결국 가정의 화평을 위해선 저도 한국팀을 응원하는 수밖에요." 13년째 서울에 살고 있는 후안 산치스 주한 스페인대사관 경제 담당 매니저(53)와 부인 강정희씨(45). 한국과 스페인전을 이틀 앞둔 20일 산치스씨 부부는 충선 세바스티안(13), 충원 크리스토발(11) 두 아들과 함께 가족회의를 열었다. 어느 나라를 응원할 것인지 정하는 것이 의제. 산치스씨는 스페인 축구의 전통이나 국민적인 축구사랑, 막대한 투자 등을 감안할 때 스페인이 이기는 게 자연스럽다고 운을 뗐다가 손을 들어야 했다. 아내와 두 아들이 막무가내로 한국을 응원해야 한다고 공세를 펴는 통에 일찌감치 승부가 나 버렸다. "아이들도 서울에서 태어나 크다보니 엄마나라 태극전사 팬일 수밖에 없지만 저는 스페인에 기우는게 본심"이라고 털어 놓는 산치스씨. 그는 "이탈리아전에서 한국 선수들이 보여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놀라운 투지에 흠뻑 매료됐다"면서도 "한국이 스페인전에서 너무 잘할까봐 은근히 근심도 된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산치스씨 가족의 이런 고민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90년 이탈리아 월드컵,94년 미국 월드컵때도 한국과 스페인이 예선전에서 맞닥뜨리며 이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요즈음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아이들도 그 당시엔 너무 어렸던 터라 부부간에 냉기류가 흐르기도 했다고 한다. 부인 강씨는 "미국 월드컵땐 TV 앞에서 서로 등을 돌리고 각자의 조국을 응원하는 등 신경전도 벌였었다"고 소개하면서 "이번엔 한국에서 열리므로 남편도 '홈 어드밴티지'를 인정하는게 당연하다"며 웃었다. 모처럼 처가 나라에서 모국팀을 맞게 된 산치스씨이지만 "이제 한국사람이 다 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지난 94년 교통사고로 입원했을 때 보신탕을 한달간 먹었을 정도로 토착화(?)됐다. 초등학교부터 아마클럽에서 뛸 정도로 축구광인 그는 지난번 한-이탈리아전 불공정 판정 시비에 대해 "한국 수비수의 태클은 정상적인 플레이였으며 이탈리아 사람들은 빨리 이성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산치스씨는 "지난 5월 한국과 잉글랜드,프랑스 시합을 보고 8강전을 예언했었다"며 "만약 스페인을 이기면 우승도 넘볼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임상택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