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만 나면 전기톱을 든다. 왱왱대는 톱 아래서 후라이팬이 댕강 절단이 난다. 접시 대신 후라이팬을 부수는 아줌마."테팔 후라이팬"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계 주방용품 회사 테팔코리아에서 마케팅을 총괄하는 팽경인 부장(39)이다. 그의 손에 박살나는 물건은 후라이팬만이 아니다. 압력밥솥도 낱낱이 분해되고 전기그릴도 산산조각이 난다. "신제품을 내놓기 전에 완벽히 알기 위해 부숴보고 조립해본다"는 것이 팽 부장의 설명이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팽 부장은 AC닐슨,코닝,테팔 등 외국계 회사에서 15년 넘게 마케팅을 담당해온 베테랑.그동안 숱한 제품을 히트상품 대열에 올려놓으며 손대는 브랜드마다 시장의 리더로 키워낸 주인공이다. 코렐,비젼,파이렉스,테팔 후라이팬 등 한국 주부들에게 사랑받는 주방용품 브랜드들이 그 대열에 있다. 팽 부장의 마케팅 지론은 "철저한 현지화"와 광고.투자를 타깃에 집중하는 "대포사격".대표적 케이스가 식기 브랜드 코렐이다. 90년대초 미국계 회사 코닝에서 마케팅을 맡던 시절 외제는 이른바 "쩨"분위기를 풍겨야 팔린다는 주위의 충고에도 아랑곳없이 브랜드 이름을 "코렐"이라고 한글로 썼고 설명서도 한글표기로 바꿨다. 본사에는 양식기 위주의 제품 라인에 한국형 제품을 추가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밥공기와 국그릇이다. 적절한 마케팅 전략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바이어를 만나는 열성이 맞물려 코렐 브랜드는 히트를 했다. 코닝코리아 매출은 10배 이상으로 늘었고 전체 지사중 미국에 이어 2위로 발돋움했다. 그 결과 싱가포르에 있는 아시아 헤드쿼터에서 마케팅 매니저로 일하게 됐다. 또 98년에는 테팔코리아가 설립되면서 마케팅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팽 부장은 테팔에서도 마케팅 원칙을 고수했다. 본사에는 한국음식에 맞게 깊이 패인 후라이팬을 주문했고 기존 제품과 차별화하기 위해 "오래 쓰고 눌어붙지 않는다"는 컨셉트로 TV광고를 냈다. 인기상품인 온도표시 후라이팬에는 "써머 스팟"이라는 어려운 제품명 대신 "열센서 후라이팬"이라는 한글명을 썼다. 쉬우면서도 첨단 냄새가 풍기는 이름은 주부들을 사로잡았다. 가격은 일반 제품의 2배 이상으로 책정했다. 그런데도 테팔은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팽 부장은 9월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요즘 눈코뜰새없이 바쁘게 산다. 오전 4시에 퇴근했다가 오전 9시에 출근하기도 예사다. 후배들은 강철같은 체력을 지닌 그를 "6백만불의 여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에게 가족의 지원은 든든한 뒷받침이다. 팽 부장은 "운좋게도 직장에서 여자라서 불리했던 적은 없었다"며 "1년중 절반을 해외에서 보낼 때도 아낌없이 지원해준 좋은 남편과 시어른들을 만난 것도 감사할 일"이라고 말했다. 팽 부장은 여성후배들이 직장에서 잘 적응하도록 돕기 위해 최근 모임도 만들었다. 여성 매니저급으로 구성된 "프로여성 직장인 위원회"가 그것이다. 커리어우먼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를 묻자 대뜸 "화는 머리로 내라"고 조언했다. 그는 "문제가 있을 때 감정을 앞세우면 십중팔구가 아니라 백발백중 진다"며 "가슴은 뜨거워도 머리는 냉철하게 조절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자신감을 갖고 좋은 방향으로 변하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글=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