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향시스템은 그림 그릴 때 사용하는 붓처럼 하나의 표현도구입니다.사운드시스템 디자이너는 그러한 도구의 상태를 최적화시켜 주는 일을 합니다." 음향전문업체 태영교역의 안훈철 대리(33)는 자신의 직업을 이렇게 설명한다. 사운드시스템 디자이너는 공연이나 각종 행사의 전체적인 음향시스템을 총괄하는 일을 한다. 스피커 설치와 배치에서부터 음향 설계까지 폭넓은 업무를 담당한다. "무작정 많은 수의 스피커를 갖다 놓는다고 음향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각각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끼리의 충돌은 오히려 메시지 전달을 힘들게 하니까요. 음향학은 물론 기초 물리학까지 어느 직업보다도 과학적인 지식을 필요로 합니다." 음향과 과학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라고 강조하는 그는 역사적인 월드컵대회 개막식의 음향시스템을 총감독하고 있다. 6만여명의 개막식 참석자 한명 한명에게 명료한 음향을 전달하는 게 그의 역할이다. 철저한 계산을 통해 경기장 주위를 둘러싸며 설치된 16개의 이동식 최신 스피커는 3층 구석의 관람석까지 일정한 음역대의 음향을 전달하게 된다. 이 작업을 위해 작년 11월부터 1백여명의 인원이 투입됐다. 스피커를 연결하는 30㎞ 길이의 케이블이 경기장 밑으로 매설될 정도로 힘든 작업이었다. "경기장 구조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통해 음향 반사정도와 경기장 내부에 머무는 잔향까지 꼼꼼하게 살폈죠.저음과 고음의 밸런스를 맞춰 관객들이 가장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음의 크기를 만드는 게 힘들었습니다.무엇보다 소리의 사각지대를 없애는데 주안점을 뒀습니다." 개막식에 참여하는 무용단원 등 2천여명의 출연진은 그가 조작하는 책상크기만한 음향 콘솔박스를 통해 조정되는 음향에 맞춰 움직이게 된다. 안 대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영화 녹음스튜디오에서 음향에 관한 기본 지식을 쌓은 후 태영교역 음향연구소에 입사해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음향전문 교육을 받았다. "학창시절 록밴드를 조직해 기타를 연주했을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습니다.그러한 취미는 자연스럽게 음향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죠." 뛰어난 사운드시스템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자질은 무엇일까. "이 세계에선 10%가 기술력이고 90%가 인간 관계라는 말이 있습니다.그만큼 동료들과의 긴밀한 관계 유지가 필요합니다.스피커 셋업에서부터 음질엔지니어 오퍼레이팅디자이너까지 수많은 사람들과의 교감없이는 일을 할 수 없으니까요." 6개월간의 월드컵 개막식 준비작업을 차질없이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것도 안 대리가 가진 이같은 철학 덕분이었다. "국내에선 아직 미개척 분야로 남아있는 만큼 직업 전망은 아주 밝은 편입니다. 도전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전공에 상관없이 한번 도전해 볼 만합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