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풀스의 정.관계에 대한 로비의혹의 핵심고리로 지목돼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김희완(金熙完)씨는 지난 85년 정계입문 이후 정당을 두루 '섭렵'한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김씨가 정치권 전반에 의혹을 뿌린 `최규선 게이트'의 핵심인물인 것도 당적을 많이 바꾼 그의 `카멜레온' 행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숱하게 당적을 바꿔가면서까지 시도한 국회의원에 대한 꿈이 좌절된 것이 결국 최씨와 어울리면서 로비와 이권에 개입하게 된 배경이 됐다는 것. 그는 85년 이민우(李敏雨) 당시 신민당 총재비서로 정계에 입문한 뒤 통일민주당과 `꼬마 민주당'을 거쳐 96년 국민회의, 99년 자민련, 2000년 한나라당을 전전했다. 김씨는 통일민주당 시절 3당 합당에 응하지 않고 잔류했다가 92년 14대 총선때 꼬마 민주당 후보로 서울 송파갑에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96년 15대 총선 때는 국민회의로 간판을 바꿔 같은 지역에 재도전했으나 실패했다. 조 순(趙 淳) 서울시장 당시 정무부시장으로 들어가 98년 6월까지 일하다 99년`6.3 재선거'에서 국민회의 당적으로 출마하려 했으나 송파갑이 당시 공동여당인 자민련 몫이 되자 자민련으로 옮겨 공천을 받았다. 이때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에게 패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 앞서 신민당 당시 인연을 맺은 무소속 홍사덕(洪思德) 의원과 함께 한나라당에 입당했으나 공천을 받지 못하자 같은해 4월 탈당했다. 이후 2000년 6월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을 준비하고 있던 권노갑(權魯甲) 전 고문의 참모로 들어가 정치적 재기를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처럼 굴절된 이력이 쌓이면서 김씨의 처신과 행보가 비틀어지기 시작했다는 게 주변의 관측이다. (서울=연합뉴스) 이강원기자 gija00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