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옛 덕수궁 터(현재 미국 대사관저)에 미국 대사관 직원용 아파트가 들어설 수 있도록 관련 법률을 개정할 방침이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사대주의적인 발상'이라고 강력히 비판하고 있고 관련 학계도 "문화유산으로 보존해야 할 가치가 높은 곳에 아파트가 들어설 경우 문화재 훼손 우려가 높고 주변 경관을 심각하게 해친다"며 반발하고 있다. 미국 대사관이 직원용 아파트를 짓기 원하는 대사관저는 현재 덕수궁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애초 덕수궁에 포함돼 있었으며 조선시대 왕들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낸 선원전(璿源殿)이 있었던 유서 깊은 자리다. ◆문제의 발단=미 대사관저에 8층 54가구 규모의 아파트를 건립하려는 계획은 미 대사관측이 해당 건물을 주택건설촉진법(주촉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시켜 달라고 건설교통부에 요청하면서 공개됐다. 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한 미 대사관저 부대사 숙소 자리에 건립하려는 이 아파트는 대사관 직원들이 사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 대사관측은 작년부터 서울시측에 아파트 건립 허가를 신청했으나 서울시가 20가구 이상 아파트의 경우 주촉법 시행령 적용 대상인 만큼 부대시설 설치 등의 요건을 맞추지 않는 한 불가하다는 입장을 보이자 문제의 아파트가 주촉법 시행령 적용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도록 건교부에 시행령 개정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행정 당국 입장=건교부 관계자는 "군인아파트,청소년 수련원 등의 경우 주촉법 시행령 적용에서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는 논란이 있어 왔다"며 "차제에 주촉법을 고쳐서 이런 특수시설과 함께 외교관용 아파트도 예외적으로 허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해당 부지가 현재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지 않아 주촉법 시행령이 개정되면 건축 허가는 불가피하다면서도 만약 보존가치가 큰 유물이나 유적이 있을 경우 아파트 건축허가를 내주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파문 확산=그간 국내에서 외국 공관의 직원용으로 대형 아파트 건립이 허용된 적은 한번도 없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덕수궁 부근은 서울의 한 가운데로 아파트를 건설하기에는 최적지이나 덕수궁 등이 인접해 있어 국내 업체들은 꿈도 꾸지 못했다"면서 "외교관용이라고 하더라도 아파트 건설을 허용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문화연대 김성한 팀장은 "조선시대 역대왕들의 영정을 모셔 두고 제사를 지내던 옛 선원전이 있던 곳"이라며 "이 곳은 현재 경복궁 주변 복원계획에 포함된 지역인데 아파트 건설은 안된다"고 주장했다. 다른 시민단체들도 "정부가 관련 법률을 개정해 가면서 허가하겠다는 것은 사대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유대형.주용석 기자 yoo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