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기세척기 문을 닫을 때 '딸칵' 소리가 나면서 이가 딱 맞게 닫히지를 않더군요. 디자인도 좀 더 신경썼으면 해요. 윗면 라인 처리가 돼 있지 않아서 깔끔한 맛이 없습니다." "오븐레인지에 국물이 넘치는 것을 방지해 주는 장치나 일정 온도가 되면 자동으로 소화되는 기능은 있습니까? 상판에 항균처리 같은 것은 돼 있나요?" "식기세척기에 행주도 빨 수 있는 기능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매번 행주를 빨고 삶아대는 것도 만만치 않거든요." "냉장고 선반을 접이식으로 만드는 건 어떨까요? 냉장고에 대형 김치통 같은 큰 통을 몇 개 넣다보면 선반에 걸릴 때가 많거든요. 접이식 선반이라면 주부들이 필요할 때마다 칸 높이를 조절해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지난달 30일 오전 11시 서울 남대문로 국제화재빌딩 동양매직 본사 18층 회의실.10여명의 여성들이 오븐레인지 식기세척기 등 동양매직의 제품에 대해 날카로운 지적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가전제품에 관한 한 전문가 뺨치는 식견을 자랑하는 이들은 바로 동양매직의 고객모니터제도인 "매직패밀리" 회원들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맹렬 모니터 요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전문가들 빰치는 식견 -모니터 일을 할 때 첫번째 계명은 절대 모니터 티를 내면 안된다는 것이다. 한번은 주부모니터라고 순진하게 말했다가 백화점 매장에서 거의 쫓겨날 뻔 했다. 하긴 물건 살 것도 아니면서 꼬치꼬치 캐 물으니 점원들이 좋아할 리 없지... 실제로 제품을 살 의사가 있는 것처럼 가장해야 직원들이 열심히 설명해주고 다른 회사 제품에 대한 장.단점까지 속속들이 알 수 있다. 정말 산업스파이가 따로 없다. -백화점 순시(?)나갈 땐 남편이 든든한 원군이다. 둘이서 신혼부부인 척,혼수감 장만하러 나온 것처럼 속이며 이것저것 물어보면 매장 직원들이 "정말" 친절하게 대해준다. 눈썰미가 좋아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기억력도 좋아야 한다. 수첩에 다른 회사와 동양매직 제품 가격이나 사양을 비교해 적다보면 당장 모니터 사원 티가 나니까. # 가전코너 먼저 찍고 턴... -가스오븐레인지나 냉장고 식기세척기 같은 가전제품은 제품 특성상 자주 바꾸질 않는다. 그러다 보니 예전엔 백화점에 가더라도 프라이팬이나 주방용 칼 사러갈 때 빼고는 가전제품 코너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요즘엔 가전제품 코너를 제일 먼저 찾아간다. 전에는 잡화매장,의류코너를 돌아다니다 지하에 내려가 장보는 게 수순이었는데...(웃음) -신랑이랑 TV 드라마를 같이 보더라도 부엌에서 요리하는 장면이 나오면 가전제품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훈수를 둔다. 그러다 신랑한테 "그냥 조용히 TV나 봐"라는 핀잔을 듣기도 하지만...예전엔 보지도 않고 내다버렸던 각종 신문 광고 전단지나 제품 카탈로그 같은 것도 꼼꼼히 챙긴다. 어디서 혼수용품전시회를 한다는 광고라도 나오면 바로 찾아가야 하니까. 경쟁사에선 어떤 제품이 나왔나 비교도 해보고 새 제품이 나왔으면 곧바로 현장조사에 들어간다. # 수다떠는 재미도 -온라인상에서 먼저 모임을 가져서 그런지 회원들끼리 얼굴을 잘 모르는 데도 남같지 않다. "매직패밀리"라는 이름으로 묶어놔서 그런지 왠지 정겹다. 게시판을 통해 이런저런 소소한 얘기들을 나누며 마음을 터놓고 지낸다. 남편이 주말에 회사 야유회 간다는 핑계로 혼자서 휑하니 놀러나가면 바로 게시판에 들어가 공개적으로 남편 흉도 본다. -몇몇 친한 회원들과는 언니 동생 하는 사이다. 지난달 동양매직과 다른 회사 제품을 비교해보는 시장조사 때는 서로 비슷한 지역에 사는 회원들끼리 모여 대여섯명이 같이 돌아다녔다. 며칠동안 고생은 했지만 사이버상에서 보던 회원들을 오프라인상에서 만나 같이 돌아다니니까 힘도 덜 들고 수다떠는 재미도 쏠쏠했다. # "아이디어 채택됐을때 가장 뿌듯" -무엇보다 내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 좋다. "패밀리 제안" 게시판을 통해 기존 제품이나 신제품에 대한 의견을 내면 사이트 운영자인 "척척박사"가 바로 답변을 달아준다. 지금까지 20~30개 제안을 내서 한두개는 채택이 됐는데 그럴 땐 시험봐서 1백점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혼자서 뿌듯해하곤 한다. 이전에는 전자메일만 쓰는 정도였는데 지금은 각종 제안에다 게시판에 글 올리느라고 몇몇 컴퓨터 자판 글자는 아예 지워졌을 정도다. 정말 요즘엔 "주부들이 어떻게 하면 더 게을러지고 편하게 살 수 있을까"하는 생각만 하고 산다. -매직패밀리 일은 백화점이나 의류업체 등 다른 업체들의 모니터 활동보다 훨씬 힘들다. 안돌아가는 머리를 굴려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도 내놓아야 하고 시장조사라도 한 번 할라치면 백화점 서너군데 돌아다니고 주변 할인매장도 찾아가야 한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교통비도 적잖게 들어간다. 월 20만~30만원씩 주는 다른 주부 모니터 제도에 비해 보수도 적은 편이다. 그래도 어느 모니터 활동보다 매직패밀리에 더 열심히 참여하게 된다. 회사에서 내 의견을 듣기 때문이다. 백화점 모니터만 해도 서비스가 친절하다 불친절하다 정도만 얘기하는 수동적인 입장이지만 동양매직에선 광고부터 제품 개발,디자인 등 전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내 의견을 말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이방실 기자 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