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쁜 걸 참 좋아한다. 잘생긴 사람도 좋아하고 근사한 집,세련된 물건도 유달리 좋아한다(여자치고 안그런 사람이 있겠냐만서도).그릇도 마찬가지다. 독특한 설탕 프림 세트만 보면 사고 싶고,집에선 사실 별로 쓸 일 없는 소금 후추병 세트에도 자주 눈길이 간다. 예쁜 커피잔과 접시,유리잔에도 혹한다. 같은 음식,같은 커피라도 그릇이나 잔에 따라 기분은 물론 맛까지 전혀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쩌다 큰맘 먹고 가는 한정식집이나 비싼 바닷가재식당같은 데서 플라스틱그릇을 사용하면 당장 상을 물리고 일어서고 싶다. 생활수준이 높아져서일까. 요즘 커피전문점 혹은 커피&케이크점의 잔과 접시는 정말 괜찮다. 커피 홍차 허브차등 차 종류는 물론 커피도 아메리칸스타일이냐 카푸치노냐 에스프레소냐에 따라 잔이 각각이고(홍차 잔은 폭이 넓고 높이가 낮다),접시 주전자 모두 "끝내준다".그런데 웬 걸,뒤집어 보면 대부분 일제인 "노리다케" 제품이다. 10년전쯤 주부들 사이에 한창 유행하다 유럽산 도자기에 밀려 줄어든 듯하던 노리다케가 커피전문점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뿐이랴.서울 강남쪽 카페로 가면 "로열 달튼" "앤슬리"같은 영국제가 주류다. 티스푼이나 포크는 "메이드 인 이탈리아" 투성이고.커피값이 비싼 곳일수록 국산 용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커피전문점과 외식업소가 증가하면서 인테리어업체만 경사났다는 말이 나오더니 외국산 도자기 식기업체 또한 비슷한 상황인 듯하다. 이대로 가면 3천억원이라는 국내 도자기식기 시장은 물론 3조원에 달한다는 선물시장까지 외제에 몽땅 내주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백화점에서도 가정용품 코너의 좋은 자리는 모두 외국산 식기가 차지하고 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소위 부잣집의 혼수품으로 "명보랑"의 금은 식기와 "광주요" "박영숙요"의 홈세트가 각광받았지만 최근엔 이중 상당수가 덴마크의 "로열 코펜하겐" 영국의 "웨지우드" 미국의 "레녹스" 상품으로 대체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가격도 커피잔 하나에 15만~25만원 정도면 최상이었으나 최근엔 1백40만원이 넘는 것(로열 코펜하겐)까지 나왔다. 시장개방 시대에 어느 나라 물건이냐를 따지는 건 우스울 수도 있다. 자기돈으로 사는 것이고 사는 사람이 있으니 파는 거니까 커피잔 6개에 1천만원 가까운 게 시판된다고 뭐랄 수도 없는 일이다. 값만큼까지는 몰라도 우아하고 품위있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고. 다만 그릇까지 고급품시장은 몽땅 수입품에 내주면 우리 물건의 경쟁력은 언제 생기나 싶어 착잡해지는 것뿐이다. 물론 우리 것중에도 우일요는 작가 김익영씨의 디자인을 원용한 백자,광주요는 분청,박영숙요는 서양화가 이우환씨의 그림을 곁들인 청화백자로 사랑받는다. 새롭고 다양한 도자기 식기 전시회도 늘고 있다. 그러나 그릇은 가볍고 단단해야 하는데다 음식의 종류,실내 분위기에 맞아야 한다. 갈수록 서구화되는 식생활과 인테리어,무게,강도를 고려하지 않은 채 전통적인 것만 강조하면 설 자리가 좁아지기 십상이다. 다행이 한국도자기와 행남자기가 올해부터 디자인과 브랜드파워를 강화,고급품시장에 도전하겠다고 나섰으니 지켜볼 일이다. 분명한 건 명품이란 뛰어난 디자인과 이를 실현시킬 뛰어난 기술, 역사와 문화를 앞세운 꾸준한 홍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하루속히 우리 그릇이 여자라면 모두 갖고, 만지고, 장식해놓고 싶은 식기 반열에 올랐으면 하고 빌어본다. 본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