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큰 몸집의 상어가 좁은 수족관 안에서 자신이 다니는 길로만 다니는 것 아세요. 일류 대기업 샐러리맨 연봉에 맞먹는 몸값의 어종도 있죠" 국내 최대 규모의 해양수족관인 서울 삼성동 코엑스아쿠아리움에서 일하는 오영진씨(28).어류연구팀 소속 아쿠아리스트다. "아쿠아리스트요,물고기들이 수족관같은 인공적인 상황에서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을 하지요" 1ℓ짜리 생수병 2백50만개 규모의 인공해수로 만들어진 지하 수중세계에는 6백여종 4만여마리의 해양 생물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유영을 즐기고 있다. 자식을 돌보듯이 이들을 '밀착'관리하는 것이 아쿠아리스트의 업무. "'물고기 양부모'나 마찬가지예요. 매일 두차례 먹이를 주는 일부터 수조 청소,번식,해수여과시스템 관리,전시방법 연구,병든 물고기 치료까지 갖은 치닥거리를 다 하죠" 90개의 크고 작은 수조마다 담당 아쿠아리스트들이 있다. 오씨는 산호초 어류인 코럴(Coral)피시 전시 수조를 담당하고 있다. "제가 맡은 집(수조)에는 5백마리의 열대어류들이 살고 있어요. 멀리 카리브해와 쪽빛 지중해로부터 공수해온 종(種)도 있죠.일반 구경꾼들의 눈에는 그놈이 그놈 같겠지만 전 모두 구분할 수 있어요" 생김새나 성격에 따라 각각의 물고기들에 '나나' '도끼' '깡패' 등의 이름을 달아준 오씨.2년 가까이 이 작고 까탈스러운 수중 생명들과 생활하며 느낀점도 많다. "저 작은 물고기들 조차도 자신의 영역에 대한 '텃세'가 심해요. 서열도 확실하고요. 다른 종을 몰래 한마리 넣으면 나머지 수백마리 물고기들이 대번에 알아채고 경계하기 시작하죠.집단 따돌림을 극복하지 못하는 나약한 놈들은 며칠 못가서 죽게 되죠" 이런 특이한 직업을 어떻게 선택하게 됐을까. 충남 보령에서 태어난 그는 동네 강과 갯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바다소년'이었다. "물고기들을 장난감 삼아 놀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특성과 습성을 깨닫고 신기해 했죠.물고기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꿈을 키운 것도 그 때예요" 취미로 관상어를 키우던 아버지의 영향도 받았다. 대학에서 해양생물양식학을 전공하던 중 우연히 아쿠아리스트 모집공고를 보고 '이거다' 했단다. 자신이 살던 바다를 떠나면 몇 시간도 안돼 죽게 된다는 갈치 7마리를 서해 앞바다에서 수족관으로 옮겨와 일주일간 전시했을 정도로 '물고기달인'으로 통하는 그는 아쿠아리스트가 지녀야 할 자질로 생명에 대한 존중을 첫 손가락에 꼽았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