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피 모발관리 전문 컨설턴트인 고지원씨(35)는 지난해 한때 탈모로 고민해야 했다. 지난 1998년부터 모발 컨설팅 일을 해온 베테랑이지만 지난해 10월 두피모발학 전문가(Trichologist)인증을 받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면서 스트레스성 탈모를 경험한 것이다. "영어로 된 두꺼운 메뉴얼과 한 달간 씨름했어요. 매일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9시가 넘습니다. 새벽까지 공부할 수밖에 없었죠.탈모에도 수많은 유형이 있고 증상에 따라 제대로 진단을 해주는 방법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메뉴얼을 기본으로 암기와 이해를 반복하다보니 정말 제 머리가 빠지더라구요" 시험과정도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모두 주관식이었고 세 시간 동안 A3용지에 최대한 많은 내용을 영어로 써야 했기 때문에 팔이 마비되는 느낌까지 받았다. 결국 이 과정을 거쳐 공식적으로 "전문가" 반열에 오를 수 있게 됐다. 그가 모발관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 1998년.홍콩에 본사를 둔 케세이퍼시픽 항공사 스튜어디스로 근무하다 결혼후 이 일을 그만뒀다. 안정적으로 활동하면서 경력을 쌓을 수 있는 분야를 찾다 영국에 본사가 있는 모발관리 전문업체 스벤슨코리아에 입사한 것이다. "이 직업은 나이가 들수록 고객들에게 더욱 신뢰감을 줄 수 있는데다 여성에게 매우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또 두피모발 관리를 학문적으로 접근해서 서비스하는 곳은 스벤슨밖에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스벤슨은 우리나라에 두피모발학을 가르치는 대학이 없기 때문에 다소 연관성이 있는 생물학이나 간호학 전공자들을 많이 채용했습니다. 그런데 이 일도 서비스업이기 때문에 스튜어디스 종사자를 회사측에서 시험적으로 채용했고 제가 이 기회를 잡은 셈이지요" 그는 "누구의 엄마",혹은 "누구의 아내"이란 칭호에 만족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남편과 아이도 소중하지만 어느 순간 내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아이가 성장하면 남는 것은 허탈한 마음 뿐입니다. 이 때가 되면 다시 직장을 찾기도 힘들어집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아이가 성장하자 우울증 증세를 보이기도 했어요. 옆에서 그분을 지켜보면서 반드시 "나만의 세계"를 남겨둬야 한다고 결심했지요" 현재 그가 관리하는 고객은 1백여명에 달한다. 그는 긍정적 고객과 부정적 고객이 확연히 구분된다고 전한다. 1주일에 두 번씩 치료를 받는데 머리카락이 굵어졌거나 숱이 다소 많아지는 것을 보면서 아주 즐거워하는 긍정적 고객이 있는 반면 비슷하게 상태가 호전됐지만 까다롭거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고객들도 많다는 것. 그래서 "아침에 출근하는 순간 간과 쓸개를 모두 엘리베이터에 내려놓고 회사문을 열어야 한다"는 입사 초기의 충고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남편에 대해 묻자 그는 음악 이야기를 꺼냈다. "남편이 음반회사에 다니기 때문에 집에 별도의 CD방이 있습니다. 벽면 세 곳이 모두 CD로 가득차있습니다. 차에서도 집에서도 항상 음악과 함께 살고 있어요. 임신중에도 음악을 많이 들었는데 아이가 태어나서 약 1백일 정도까지 매일 밤 2시간씩을 울어댔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영화 황비홍의 주제곡를 들려줬더니 신기하게도 울음을 멈췄습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임신중에 그 음악을 많이 들었더군요" 그는 집에서 편안히 보낼 수 있는데 왜 아직까지 피곤하게 일을 하느냐는 이야기를 가끔씩 듣곤 한다. 그러나 그의 입장은 단호하다. "일을 오래 할 수 있는 건강을 유지하고 싶어요. 나이보다 건강하고 힘차게 산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행복해집니다. 나이가 들고 어느 시점이 되면 실컷 놀아보겠지만 그 이전까지는 편하게만 살고 싶지 않습니다" 김남국 기자 n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