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법조타운인 서울 서초동에도 구조조정 바람이 불고 있다. 이 곳에서 16년째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해온 김모 변호사. 그는 조만간 23평 규모의 사무실을 10평 안팎으로 줄이기로 했다. 또 직원 1명을 내보낼 계획이다. 임대료·관리비(월 1백50만원)와 직원 2명 인건비(월 3백여만원),그리고 기타 비용 등 월 5백만∼6백만원에 달하는 사무실 운영비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20일 "작년만 해도 60여건의 민.형사 사건을 맡았지만 올들어 지금까지 5건을 맡는데 그쳤다"며 "생존하려면 비용을 절감해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한탄했다. 변호사들이 '적자생존'의 상황에 직면했다. 법률 서비스 시장에 엄청난 양의 새로운 공급자(변호사)들이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 규모는 한정돼 있는데 변호사 수만 급증하는 상황인 만큼 '무한경쟁'은 갈수록 격화될 수밖에 없다. ◇ '변호사 1만명 시대' 성큼 =20일 현재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된 국내 변호사 수는 4천9백93명. 올해 연수원에 입소한 33기생이 수료하는 2004년부터 매년 1천명의 법조인이 새로 생긴다. 이대로라면 오는 2008년께 '변호사 1만명 시대'가 열리게 된다. 그러나 변호사 1만명 시대는 이보다 빨리 올 수 있다. 이미 수백명의 외국 변호사들이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데다 2005년께부터 외국 로펌들도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박재승 서울변호사회 회장은 "변호사가 대중 속으로 뛰어들어야 할 시대가 왔다"며 "법원 근처에서 송무만 다루던 변호사들이 아파트나 상가에서 주민들간 분쟁을 조정하는 것은 물론 중소기업에 입사해 법무실을 이끄는 경향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 경쟁 격화는 수익성 저하로 =변호사 수가 늘어나면서 벌써부터 수익성 저하가 표면화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변호사들이 일반 민.형사 사건을 수임할 때 받은 평균 보수는 3백85만원. 수임료는 지난 99년 하반기 4백56만원에서 2000년 상반기 4백34만원으로 떨어진 뒤 같은해 하반기 4백7만원으로 속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사건 수임 건수도 꾸준히 줄고 있는 추세다. 이에 따라 상당수 개인 변호사들은 그동안 '수준 낮은 일'이라며 눈길을 주지 않던 법무사들의 업무를 건드리고 있다. 경력 10년의 이모 변호사는 "간단한 소송장을 써주거나 등기 업무를 처리해주는 일도 적극적으로 맡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사무실 운영비를 줄이기 위해 개인 사무실을 운영하던 변호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소형 로펌을 만드는 것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지난 15일 현재 변협에 등록된 법무법인 수는 모두 2백17개로 지난 96년 94개에서 2배 이상 증가했다. 경쟁이 치열해면서 덤핑 수임료를 제시하는 변호사까지 생기고 있다. 중견 로펌의 박모 변호사는 "사건을 따내기 위해 A기업에 한 달 동안 '공짜 자문'을 해줬는데 최종 계약체결 단계에서 덤핑 수임료를 제시한 B로펌에 사건이 돌아갔다"며 "B로펌이 내건 수임료가 터무니 없이 낮았던 탓에 더 낮은 수임료를 제시할 수도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 심화되는 '부익부-빈익빈' =변호사 1만명 시대의 약자는 특정한 분야에 강점이 없는 일부 개인 변호사들이나 소형 로펌이 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예측. 전문성이 떨어지는 만큼 '낮은 수임료'가 유일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반면 실력을 갖춘 대형 로펌과 전문 로펌들은 별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법무법인 광장의 임성우 변호사는 "대기업들은 대규모 프로젝트에 대한 법률 자문이나 거액 소송을 맡길 때 수임료에 관계없이 가장 실력 있는 로펌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실제 공정위 조사결과 변호사들의 최고·최저 보수 격차는 2000년 상반기 5∼13배 수준에서 지난해 14∼30배로 확대됐다. 법무법인 화백의 박영립 변호사는 "의료계 발전 방향과 비슷한 형태로 법무시장이 빠르게 재편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종합병원 형태의 몇몇 대형 로펌이 시장을 주도하고 금융 등 특정 분야에 특화된 클리닉 형태의 전문 로펌이 허리를 받치게 될 것"이며 "개인 변호사들은 중소기업과 개인의 법률 주치의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