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숙은 요즘 새로운 즐거움에 푹 빠져있다. 얼마 전에 시작한 검도가 바로 그것!그녀의 남편은 샐러리맨 7년차.만성피로증에 시달리고 있다. 병원에 가면 의사는 남편의 증세를 한마디로 일축하곤 했다. "신경성,스트레스입니다!" 비 맞은 새처럼 날마다 빌빌거리는 남편을 구할 사람은 이 세상에 딱 한사람 아내 뿐.그녀는 짱구를 굴려 별의 별 생각을 다했다. "새벽마다 조깅을 할까? 아니면 수영?" 그러다가 우연히 친구에게서 최신정보를 듣게 됐다. 검도도장에 다니면 정신이 번쩍 들만큼 사람이 달라진다는 것.폐차장으로 가기 직전의 중고차가 금방 새로 뽑은 신형 차처럼 반짝반짝해진다나? 그녀가 맨 처음 검도도장에 다니자고 제안하자 남편의 첫 반응은 "노 탱큐 곱배기,네버(never) 따따블!"이었다. 피곤한 이유가 잠자는 시간이 절대 부족하다는 것인데 왠 검도도장이냐는 것. "당신,남편을 갑자기 무사 만들어서 어디다 써먹겠다는 거야? 그렇잖아도 기운 빠져 죽겠는데 칼 들고 싸울 힘이 어디있냐~굽쇼?" 남편은 "검도=칼싸움"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고정관념처럼 힘이 센 녀석도 없다. 한번 그것에 사로잡히면 여간해서는 마음을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편을 설득하느라고 무려 3박4일을 끙끙거렸다. 검도란 힘을 낭비하는 게 아니라 힘을 키우는 것이다. 무사가 되기 위함이 아니라 마음상태를 가다듬어 "진짜 인간"이 되기 위함이다. 사소한 일에도 비스켓처럼 "와사사~"부서지는 약한 마음을 철근처럼 강하게 만들면 얼마나 멋진가! 남편은 평소에도 "쓸데없는 짓"은 결코 하지 않는 아내라는 것을 알기에 마지못해,어쩔 수 없이 따라와 주었다. 초급반에서는 제일 먼저 몸의 군형을 유지하며 몸을 이동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뒷발로 바닥을 밀면서 발의 형태를 바꾸지 않고 앞으로 나가는 동작부터 배웠다. 이른바 "밀어 걷기".그런 다음 몸을 푸는 동작에 돌입하면서 "찌르기""치기" 등 죽도 사용법을 익히게 된다. 상대를 위협하면서 내지르는 소리 "얍!"은 몸 안에 산처럼 쌓여 있는 스트레스를 원샷으로 날려버렸다. 그 후련함을 무엇에 비할까! 두달쯤 되면 5급이 된다. 비로소 호구를 착용할 자격증을 얻게 되는 셈이다. 그때부터는 유난히 고함을 많이 내지르게 된다. 그냥 목에서 나오는 얕은 소리,단순한 외침이 아니라 저 깊은 곳,배 밑에서 나오는 우렁찬 소리 "기합"이어야 한다. 검도를 배우고 난 후 지은숙은 하루가 다르게 씩씩해지는 남편의 기상을 느꼈다. 몸 어디선가 콸콸 쏟아지는 에너지,역동하는 힘이 보이는 듯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변화는 모든 것을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는 "심안"을 기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눈앞의 대상은 물론 마음속의 적도 제압할 수 있다. 보너스로 주어지는 기쁨은 새벽마다 함께 검도도장을 다니다보니 할 이야기가 더욱 더 많아진다는 것.부부사이에 대화가 풍성한데 무엇이 부족하랴? 남편은 집에서도 아내를 향해 기합을 내지르면서 씩씩한 기상을 마음껏 과시한다. 아내도 질세라 "얍!" 소리지르고 꼬마녀석도 따라서 "얍!" 씩씩한 기합소리에 어디선가 봄 새싹도 파릇파릇 "초특급"으로 돋아나고 있진 않을까? 아침마다 깨우느라고 야단법석을 떨던 시절이 먼 옛날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