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대 한문학과 안대회 교수가 재발굴한 18세기 문인 노긍(盧兢)의 글쓰기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산문 1편을 소개한다. 속생각까지 이처럼 적나라하게 전면에 표출한 시인이 그 시대에 존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국문학사는 새로운 보석 하나를 건진 셈이다. 이 산문은 노긍이 영조 47년(1771) 1월 과거시험장에서 답안지를 팔았다는 죄목으로 평안도 오지 위원군에서 6년 동안 유배생활을 할 때 쓴 글이다. 내가 변방 고을에서 죄를 복역하느라 천신만고를 골고루 겪지 않은 것이 없었다.활처럼 몸을 구부려 자는 밤이면 밤마다 망상이 생겨 온갖 잡념이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번지면서 얼토당토않은 갖가지 일이 떠올랐다. 잡념은 이런 데까지 번졌다. "어찌해야 사면을 받아 돌아갈까?" "돌아간다면 어떻게 고향을 찾아가지?" "가는 도중에 무엇으로 견디나?" "고향에 도착해서 문을 들어설 때는 어떻게 할까?" "부모님과 죽은 마누라 무덤을 찾아서는 어떻게 하지?" "친척들이나 친구들을 찾아보고 빙 둘러 앉아서는 무슨 말, 어떤 표정을 지어야하지?" "채소는 어떻게 심으며 농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잡념은 더더욱 작은 일에도 이르렀다. 어린 자식놈들 서캐와 이는 내가 손수 빗질해서 잡고, 곰팡이는 피고 물에 젖은서책일랑 뜰에서 볕에 말려야지" 세상 사람들이 응당 해야 할 일체의 일들이 몽땅 가슴으로 빠짐없이 찾아들었다.그렇듯이 몸을 뒤척이다 보면 창은 훤히 밝아오고 일어나면 도무지 실현된 것이라곤전혀 없이 멀쩡하게 위원군(渭原郡)에서 귀양살이하며 걸식하는 한 사내일 뿐이었다.밤 사이의 생각은 어느 곳으로 돌아갔으며 나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저도 모르는사이에 절로 실소가 터져나와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오늘 밤에도 새벽녘이면 찌그러진 초가집 속에서 다시 몇 천 몇 만 명의 사람이다시 몇 천 몇 만 가지의 잡념을 일으켜 이 세계를 가득 메우게 되겠지. 속으로는이익을 챙길 생각을 하면서 겉으로는 명예를 거머쥘 생각을 하겠지. 귀한 몸이 되어 한 몸에 장군과 재상을 겸직할 생각을 하고, 부자가 되어 재산이 왕공(王公)에 버금가는 생각을 하겠지. 그 뿐만이 아니야. 첩들이 뒷방을 가득채울 생각도 할 테고 아들 손자가 집안 가득 넘쳐날 생각도 할 터이며, 또 자기를내세워 남들을 거꾸러뜨리려는 생각도 하고, 남을 밀쳐내 원한을 보복하려는 생각도할 것이다. 원래 사람이란 그 누구도 한 가지 생각이 없는 자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 사람도 창이 훤하게 밝아와 일어나면 도무지 실현된 것이라곤 도무지없고 멀쩡하게 가난한 자는 도로 가난한 자로 돌아오고 천한 자는 천한 자로 돌아오며, 이가(李家)는 본래의 이가로 돌아오고 장가(張家)는 본래의 장가로 돌아가는 것이다. 보통 전생에서 쌓아놓은 근기(根基)를 현세에서 받아쓴다고들 한다. 조화옹(造化翁)은 목이 뻣뻣해서 눈꼽만치도 인정을 봐주지 않는다. 인간의 운명을 한 번 결정지어 놓은 다음에는 결코 다시금 고쳐서 두 번의 기회를 만들어주는 법이란 아예없다. 네 놈이 아무리 이리 생각하고 저리 궁리하며, 요렇게 잔꾀를 부리고, 저렇게수단을 부려서, 10만8천리 근두운(근頭雲)을 타고 날아다니는 손오공의 신통한 기량을 발휘한다 쳐보자. 아무리 날뛰어도 부처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고, 아무리 뚫고 나가도 분수 밖으로는 나가지 못한다. 도리없이 오늘도 또 제 본분에 맞는 밥을 씻고, 제 본때에 어울리는 옷가지를 걸치는 법이다. 그러다가 염라대왕이 보낸 저승차사가 명부를 갖고 이르면 즉각 길에 올라 한시도 지체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의 수천 가지 생각, 수만 가지 상념을 뒤에다 남겨두고는 머리를 수그리고 그 뒤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제게는 하고 많은 숙원이 있었는데 아직 고민을 다 끝내지 못했사오니 제발 기한을 늦추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말은 끝내 입밖에 내지도 못한 채 말이다. 쯧쯧쯧, 이러한 행로가 정녕 인간이 필경 맞닥뜨릴 종착지다. 이것을 인정하고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미리 짐을 꾸려 할 일을 줄이는 방법인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