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급발진 사고 원인을 차량 제조사의 기계설계상 결함으로 보는 판결이 국내 최초로 나왔다. 지난해 9월 서울지법 남부지원이 사고 정황상 급발진 사고로 보고 제조사의 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내렸으나 구체적으로 기계적 결함을 적시한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천지법 제6민사부(재판장 黃漢式부장판사)는 25일 박모씨 등 대우자동차㈜ 차량운전자 42명이 차량 급발진 사고로 피해를 봤다며 대우자동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0대의 차량은 당시의 기술 수준과 경제성에 비추어 안전성과 내구성을 갖추지 못한 결함이 인정된다"며 원고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나머지 차량 32대의 급발진 사고는 현재의 기술상 정확한 원인 규명이어렵거나 운전자의 오조작이 인정돼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미국이나 일본은 90년부터 급발진 사고예방을 위해 시프트록(Shift Lock)을 달았고 우리나라 자동차 회사 역시 수출용 차량에 이 장치를 장착했으며 피고 회사도 지난 94년부터 급출발 방지장치라고 소개하며 프린스 승용차에 장착했으나 사고 차량에 이를 달지 않은 것은 결함없는 제조물을 생산해야할 주의 의무를 위반한 과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제조원가가 대당 3천500원인 시프트록은 운전자가 브레이크페달을 밟지 않으면 변속기의 선택레버가 주차위치에서 다른 위치로 옮길 수 없게 하는 일종의 급발진 방지장치이다. 재판부는 따라서 94년 이후 생산된 차량 10대(아카디아 6대, 누비라 3대, 에스페로 1대)에 한해 급발진 사고를 제조사의 책임으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다만 이들 피해 차량이 보험에 가입돼 있고 피해자들이 지불했다는 치료비도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아 위자료의 일부만 인정해 200만∼500여만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이들 급발진 사고 차량에 보험금을 지급한 보험사들의 제조사에 대한구상권 청구소송이 잇따를 전망이다. 이번 판결은 유사 급발진 차량사고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황 부장판사는 "94년부터 시프트록을 급출발 방지장치라며 프린스 승용차에 달았으면서도 문제의 차량에 시프트록을 장착하지 않은 것은 당시의 기술 수준이나 경제성에 비춰 결함없는 제조물을 생산해야할 주의 의무를 위반한 과실이 있다고 판단된다"고 판결 배경을 설명했다. 원고측 하종선(河鍾瑄)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차량 급발진 사고가 일부 차량의기계설계상 결함을 인정, 원고에 손을 들어준 국내 최초의 판결"이라며 "6대의 아카디아 승용차에 대해서는 부품제조회사인 일본 혼다자동차를 상대로 추가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우차 관계자는 "기술적으로 급발진 사고가 차량의 결함에서 발생할 수 없다는게 우리의 판단"이라며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박씨 등 대우차 운전자 42명은 급발진 사고로 피해를 보았다며 99년 5월부터 하변호사를 통해 대우차를 상대로 1인당 5천만∼6천여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잇따라 냈다. (인천=연합뉴스) 김창선기자 changs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