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교육을 위해 미국 영국 캐나다 등으로 아내와 자녀를 보내고 홀아비 신세가 된 ''기러기 아빠''들이 알코올성간질환 우울증 영양결핍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자녀의 ''밝은 미래''를 꿈꾸며 ?가족 생이별? 이란 결단을 내린 이들은 서울 강남지역과 분당 등 신도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서울 대치동의 미스터M한의원은 요즘 주상(酒傷)을 호소하는 기러기 아빠 환자들로 북적대고 있다. 최근 진료한 3백여명의 주상 환자 가운데 20% 정도가 기러기 아빠라는 게 미스터M한의원 이종훈 원장의 설명이다. 자식교육을 위해 ''부부이산''을 마다하지 않는 세계 최고 교육열 지대인 서울 대치동 일대와 분당 신도시에 기러기들이 몰려있다. 이들 불쌍한 아빠들은 과음으로 속이 메슥거리고 아랫배가 차갑게 느껴지며 설사나 무른 변을 자주 본다고 의사들에게 호소한다. 속이 쓰리거나 위가 늘어져 소화력이 예전보다 못하고 항상 피로감을 느끼며 두통도 가끔씩 찾아온다고 한다. 술을 많이 먹으면서 고르게 영양섭취를 못하다보니 얼굴이 수척하다.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사는 K대 한의대 A교수(48)는 아내와 고2,중2인 아들과 딸을 미국에 보내고 혼자 지낸 지 2년째.한의대 교수로 건강관리에는 누구보다 자신을 갖고 있었는데 요즘 제자들로부터 ''갑자기 늙었다''는 얘기를 듣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기러기 아빠들은 불규칙한 식사,우울증,불안감 등으로 심신이 지쳐 있다. 신영철 성균관대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교수는 "40대 중반에는 갱년기가 찾아오는 시기라 육체적 기능이 떨어지고 정신적 공황이 찾아오게 마련"이라며 "이런 시기에 장기간 가족들과 헤어져서 지낼 경우 우울증 불안증 강박증에 걸리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전문의들은 내성적이고 사교적이지 못할수록 특히 ''이산증후군''이 심하게 나타난다고 말한다. 첫째는 건강에 대해 지나치게 염려한다는 것.조금만 몸이 안 좋아도 ''이러다가 정말 쓰러지는 것이 아닐까'' ''내가 쓰러지면 돈은 누가 벌어 보낼까''하는 걱정을 한다. 둘째는 피해망상 또는 박탈감이다. ''내가 돈 버는 기계인가'' ''무슨 영화를 누리려고 처자식과 생이별해야 하는가''라고 느낀다. 주위에서 손가락질하고 비아냥거리는 것 같아 신경이 쓰인다. 비록 자식 사랑에 보내기는 했지만 아내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경우에는 피해의식도 느낀다. 자식이 외국의 좋은 대학이라도 들어가면 좋지만 만약 실패하면 내꼴이 어떻게 되느냐는 두려움에 시달린다. 셋째는 직장에서도 복지부동형이나 수동형으로 꼽히는 경우가 많다.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사라지는 요즘 튀는 행동을 했다가 회사에서 잘리면 가족에게 송금할 자금줄이 끊기는 셈이니 행동반경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물론 기러기 아빠 대부분은 자식을 잘 기르겠다는 의지가 강한 만큼 절제력도 뛰어나다. 서울 사당동 정찬호 신경정신과 원장은 "기러기 아빠들 가운데 알코올 마약 도박 등에 중독된 사람은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다"며 "이들 중 변호사 의사 등 부유층은 우울증 문제가 심각한 반면 회사원 등은 경제적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신영철 교수는 "기러기 아빠의 정신적 방황은 한국에만 있는 특수한 현상"이라며 "가족구조가 부부중심이 아니라 부모 자식 간의 수직적 관계를 더 중시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진단했다. 기러기 아빠가 줄고 교육도 정상화되기 위해선 부부중심으로 가정이 운영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