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CNN 앵커가 고향 땅을 밟아보고 싶다던 한국인 외할머니의 소원을 풀어드리기 위해 외할머니의 사후 19년만에 북한땅을 찾았다. 현재 CNN 홍콩 지사장을 맡고 있는 달턴 다노나카(47)씨. 약 20년 동안 언론계에 몸을 담아 온 다노나카씨는 최근 CNN의 메인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인 아시아 비지니스라는 프로그램의 앵커를 맡고 있어 국내에도 다소 낯이익은 인물. 다노나카씨에 따르면 평양이 고향인 그의 외할머니 김선내(83년 작고)씨가 고향을 등지고 하와이 호놀루루로 이민을 떠난 것은 지난 1905년. 낯선땅으로 건너가 처음에는 고생도 많았지만 이후 김치공장 등을 운영하며 하와이에서는 비교적 부유하게 살 수 있었던 김씨는 나이가 들수록 고향생각은 짙어만 갔고 지난 79년부터는 "죽기 전에 고향땅을 한 번 밟아보고 싶다"는 소망을 담은 편지를 UN 북한대표부에 보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손자 다노나카씨도 이런 할머니의 소원을 이루고자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그때까지만해도 어느 때보다 굳게 닫혀있던 북한의 빗장을 열 수는 없었다. 이렇게 세월을 흘러 끝내 김씨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지난 83년 세상을 달리했고 다노나카씨의 노력도 허사로 돌아가는 듯 했다. 하지만 희망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한국을 통해 북한 금강산 관광을 할 수 있게 된 지난 98년부터. 다노나카씨는 다시 북한측에 할머니의 소원을 이룰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매달렸고 내내 거절하던 북한 당국도 금강산에서 할머니의 유해라도 뿌릴 수 있도록 허락했다. 다노나카씨는 마침내 2002년 새해 첫날 북한 해금강을 찾아 한국 관광객들의 박수와 취재진의 조명을 받으며 할머니의 유해 대신 할머니의 흔적이 섞인 유리병 속에 담긴 흙을 북한 해금강에 뿌렸다. 또 생전 할머니가 애용하시던 스카프도 함께 해금강 주변 소나무에 매달아 할머니의 영혼이나마 고향의 공기를 한껏 맛보실 수 있도록 했다. 다노나카씨는 "늦긴 했지만 고향땅을 밟아보고 싶다던 할머니의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게 돼 기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고성=연합뉴스) 이봉석기자 anfou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