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왕가에 백제 왕실의 피가 섞였다는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발언은 '깃털'에 불과합니다" 오 랫동안 백제사를 연구해온 재야사학자 김성호(67.한국농촌경제연구원 고문)박사는 "아키히토 일왕이 언급한 간무(桓武)뿐만 아니라 일왕가 자체(몸통)가 백제인의 후예"라고 주장했다. 1982년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을 펴내 주목받았던 김 박사는 "백제는기원이 다른 온조백제와 비류백제가 따로 있었다"고 전제한 뒤 "비류백제의 마지막왕인 응신(應神)이 서기 396년 고구려 광개토왕의 공격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가 15대 일왕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응신은 이전의 일본 왕들과 다른 성을 사용함으로써 「일본서기」가 표방하는 만세일계(萬世一系) 황통에도 어긋난다"고 근거를 제시했다. 따라서 아키히토 일왕이 간무의 생모 다카노 미가사(高野新笠)가 백제 무령왕의후손이라고 밝힌 것은 한일 고대사 전체를 돌아볼 때 아주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번에 아키히토 일왕이 밝힌 간무의 생모는 무령왕의 아들 사아군(斯我君.순타.純陀)의 직계후손이라고 「속일본기」에 적혀 있다. 간무 재위시 편찬을 지시한 「신찬성씨록」에도 이같은 관계는 비교적 소상히 나와 있어 일본 왕실과 백제 왕실의연관성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한편 무령왕은 일본 북규슈(北九州) 가당도에서 백제 개로왕의 서자로 태어나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백제 왕위를 계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령왕릉발굴시 그의 관이 일본의 특정 지역에서 자라는 금송(金松)으로 제작된 것으로 밝혀져 한일 고대사의 밀접했던 교류를 시사한 바 있다. 김 박사는 "왜(倭)는 일본의 토착민이 아니라 중국의 해상민족이었던 오(吳)족이 한반도를 거쳐 건너간 것"이라며 "고대 역사서에 언급된 왜의 존재와 광개토왕이주몽의 후손인 온조백제를 남겨두고 조상이 다른 비류백제를 멸망시킨 것을 규명하는 것은 베일에 싸여 있는 한일 고대사를 푸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박사는 서울대 농업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 교토(京都) 대학에서 농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일하면서 고대사를 천착, 「고대 조선의역사 연구」(1983) 「중국진출 백제인의 해상활동 천오백년」(1996) 「씨성으로 본한일민족의 기원」(2000) 등을 펴냈다.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ckchu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