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7년 옛 국가안전기획부의 '수지김 피살사건' 은폐의혹 수사가 마무리 단계로 접어든 가운데 공소시효와 상관없이 진상을 철저히 규명, 이를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단순 살인사건을 대공사건으로 둔갑시켜 공안정국 조성에 이용한 관련자들은 지위고하를 떠나 역사 앞에 사죄하는 차원에서 검찰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지적이다. 검찰은 11일 장세동 당시 안기부장을 소환조사함으로써 당시 안기부 관계자들에대한 조사를 사실상 마무리했다. 검찰은 지금까지 수지김 남편 윤태식씨를 직접 조사한 안기부 대공분실 관계자중 일부와 전모 전 대공수사국장, 각각 안기부 1.2차장이던 이해구.이학봉 전 의원등을 차례로 소환, 조사했다. 이들 중 장 전 부장을 제외한 대부분 안기부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책임을 위로떠넘기거나 '잘 모른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장 전 부장은 검찰에 출석하면서 "수지김 사건의 처리 과정이 어찌됐든 본인의불찰이며, 최고책임자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건은폐에 대한 책임을 사실상 인정했다. 그는 그러나 "오래 전 일이라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며 책임소재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사건에 연루된 당시 안기부 및 외무부 관계자 중 일부는 소환요구에 아예 불응하거나 연락이 닿지 않고 있는 상태다. 검찰 관계자는 "일부 관련자들은 계속되는 소환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며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국가기관들의 치부가 드러난 만큼 이번 기회에 잘못을 사죄하고 새출발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내부에서도 형사처벌 여부를 떠나 사건 은폐에 개입한 인사들을 끝까지 추적, 철저히 책임소재를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당시 시대상황을 감안할 때 대공사건으로 포장된 수지김 사건에 안기부장 윗선이 개입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 이와 관련, 장 전 부장은 `최고통치자 등에게 보고되지 않았냐'는 질문에 "수지김 사건이 살인사건이란 얘기가 나오면서 정보가치가 크게 떨어져 보고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온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안기부장선에서 처리됐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또 지난해 경찰의 내사중단 과정에도 국가정보원 최고책임자가 연루됐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고 엄익준 당시 국정원 2차장이 사건은폐를 지시한 사실을 확인했지만, 엄 전 차장이 사망한데다 김승일 전 대공수사국장도 당시 국정원장의 개입여부에 대해 함구하고 있어 최종 수사결과가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k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