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학년도 수능시험의 난이도 조절 실패로 수능점수 대거 동반하락 현상이 현실로 나타난 가운데 어려운 시험에 낭패를본 중상위권 학생들을 위주로 재수보다 유학을 떠나겠다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 가지만 잘 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말에 한번 속은 이상 더 이상은 1년앞을 내다볼 수 없는 교육정책의 희생양이 되고 싶지 않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이 이들의 해외행을 재촉하고 있다고 일선 교사들은 전했다. ◆ 재수포기.유학 희망자 속출 = 서울 강북의 B여고 3년생인 S양은 평소보다 70점 가량 점수가 폭락, 수능 4등급밖에 받지 못해 조건부로 합격했던 H대 입학이 좌절되자 아예 영국 유학길에 오르기로 했다. 정시에서 좋은 결과를 얻으리라는 보장도 없거니와 해마다 난이도가 널뛰듯 하는 상황에서 재수를 하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라는 판단 아래 고심끝에 S양의 부모도유학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고 4일 담임교사는 전했다. 서울 D고의 경우 수능성적이 공개된 전날 하향 안전지원으로 중위권대학 1,2학기 수시모집에 모두 합격한 내신 1∼2등급 수준의 상위권 학생 2명이 고3교무실을찾아와 유학상담을 신청했다. 이들은 당초 원하는 학과를 겨냥, 정시에 재도전해 볼 생각이었지만, 성적이 예상만큼 나오지 않자 아예 유학쪽으로 마음을 바꿨고, 장기간 해외체류 경험으로 토플 점수가 큰 장벽이 되지 않은 점도 이들의 해외행 결심을 거들었다. 강남 8학군의 K여고 3학년 담임교사도 "어제 하루만도 수능 점수가 크게 떨어진학생 3명이 중국 등 해외유학이 가능한지 의논하기 위해 진학실을 찾았다"며 "올해는 재수보다 유학을 선택하는 학생들이 예년보다 더 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외국대학 중에는 내신 성적을 중요시하는 곳이 상당수 되는 만큼 수능성적에서는 좌절을 맛봤지만 비교적 내신이 좋은 학생들도 외국유학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많았다. 강남 K고의 경우 아예 수능준비 대신 내신관리만 하면서 처음부터 외국 유학준비만 해온 고3생도 5명이나 된다. ◆ 유학원, 어학원 문의 급증 = 서울시내 일부 어학원에는 `국내에서는 뾰족한방법이 없다'며 토플 강의 등을 신청하는 고3생들로 줄을 잇고 있다. 더욱이 미국 테러사건 이후 미국 유학 붐은 다소 수그러든 반면 중국이나 캐나다쪽 대학을 선호하는 현상이 늘고 있다고 유학원 관계자들은 전했다. 서울 종로의 Y유학원 관계자는 "수능에서 기대한 성과를 얻지 못한 고3학생들의해외 유학문의가 부쩍 늘어 하루 평균 5∼6건씩 접수되고 있다"며 "선호국도 미국에서 요즘은 중국 등으로 옮겨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C유학원 관계자도 "유난히 어려워진 시험탓에 수능후 본격화되는 고3생의 유학문의가 작년보다 10∼20% 늘었다"며 "어제도 평소 상위권대를 유지했지만 200점대로폭락했다는 한 고3생의 부모가 전화를 해 중국유학을 상담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수능충격으로 인해 충분한 준비없이 무턱대고 해외행을 택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입시전문가들의 지적도 만만치 않았다. 한 입시관계 전문가는 "당장은 수능 충격에서 벗어나기 힘들겠지만 하루빨리 안정을 되찾는다면 굳이 재수를 하지 않더라도 정시에서 충분히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며 "맹목적인 도피성 유학은 대부분 실패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송수경 이귀원 기자 lkw77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