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몽 항전기간인 고려 고종 42년(1255)에 완성된 고려 문인 최자(崔滋)의 시화집(詩話集)인 「보한집」(補閑集) 중에서 가장 오랜목판 인쇄본이 중국 베이징(北京) 국가도서관(옛 베이징도서관)에 소장돼 있음이 밝혀졌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유출됐다가 중국에 건너간 이 목판본에는 지금까지 전혀그 존재를 알 수 없던 발문(跋文)이 확인됨으로써 「보한집」 편찬을 둘러싼 여러궁금증이 풀리게 됐다. 한중문화교류사 전공인 순천향대 중문과 박현규 교수는 중국 국가도서관 '선본열람실'(善本閱覽室)에 소장된 「보한집」을 분석한 결과 현존 규장각 및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조선 효종 10년(1659) 경주에서 찍어낸 것보다 빠른 최고(最古) 목판인쇄본임을 확인했다고 30일 말했다. 박 교수는 신발견 「보한집」에 대한 조사 결과 및 의의를 국학관련 학술잡지인「문헌과해석」겨울호를 통해 소개한다. 모두 3권3책인 이 목판본 권상(卷上) 첫 머리에는 '보한권상 수대위 최자 찬'(補閑卷上 守大尉 崔滋 撰)이라고 씌어 있다. 책 머리에는 최자의 서문이 있고 제일 뒤에는 지금까지 전혀 그 존재를 알 수없던 이장용(李藏用)이라는 최자의 동시대 인물이 쓴 발문이 붙어 있다. 박 교수가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소 안대회 박사를 비롯한 몇몇 동료 연구자와함께 이 도서에 찍힌 도장 등을 검토한 결과 이 중국 소장 「보한집」은 임진왜란이전 조선에서 발행된 것임이 밝혀졌다. 임란 때 조선에서 약탈당해 일본의 한 문고에 소장돼 있다가 메이지시대 초기에도쿄(東京)로 옮겨지던 중 이를 실은 배가 난파되는 바람에 선원을 거쳐 1873년 중국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이 책이 구체적으로 언제 판각된 것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임란 이전에 나왔고, 고려시대 판본이 아님은 확실한 이상 몇 가지 기록을 대비할 때 조선 성종 재위 23-24년(1493) 때 이극돈(李克墩)이라는 인물이 경상도에서 간행한 목판본으로추정된다고 박 교수는 덧붙였다. 이 신발견 목판본에서 처음으로 존재가 알려진 이장용의 발문은 을묘년, 즉 1255년 7월에 쓴 것으로 고려 문집의 현황, 책명 풀이, 각판 과정 등을 담고 있다. 이 발문을 통해 '補閑'(보한)이라는 책 제목에 담긴 뜻이 확실히 밝혀졌으며 최자와 당시 최씨 무신정권과의 관계도 더욱 명백해지게 됐다. 또한 「보한집」이 판각된 시기도 종래 고종 41년(1254)에서 1년 늦춰지게 됐다. 아울러 이 「보한집」의 선배격으로서 이인로가 편찬한 「파한집」이 언제 편찬됐는지에 대해서도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발문을 쓴 이장용은 자기 집에 소장된 정서(鄭敍)의 「잡서」(雜書)와 「보한집」을 함께 묶은 적이 있는 인물이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